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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국민투표법·탄소중립기본법···‘헌법불합치’ 이후, 입법 공백 손 놓은 국회

2026.02.17 18:35 입력 2026.02.17 20:58 수정 박하얀 기자

낙태죄 7년·국민투표법 12년째 ‘공백’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시한은 28일까지

“강성 지지자 의식 정치적 법안만 우선시”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법사위는 이날 여권 주도로 재판소원·대법관 증원법을 통과시켰다. 연합뉴스

‘낙태죄’ 7년, 국민투표법 12년.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채 흘러온 시간이다. 여대야소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법안 등 이른바 쟁점 법안들을 소관 상임위에서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더디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국회가 손보지 않은 법률은 지난 4일 기준 총 27건이다. 위헌 법률 16건, 헌법불합치 법률 11건 등이다.

이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관 법률은 위헌 7건, 헌법불합치 5건 등 총 12건으로 상임위 가운데 가장 많았다. 개정 시한이 지난 법률은 ‘낙태죄’, ‘미혼부 출생신고법’ 등 5건이다.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결정 후 7년가량 입법 공백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11일 임신중지 수술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31일까지 대체 입법 마련을 권고했다. 이후 낙태죄의 법적 효력은 상실됐지만 국회가 입법에 손을 놓으면서 임신중지를 한 여성이 살인죄로 기소되는 등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법사위에 법안 1건이 계류돼 있으나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임신중지 법·제도 추진’과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사유 제한 없이 임신중지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임신중지 약물을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도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미프진과 같은 임신중지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4년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권고했다.

복지위 소속 여당 의원은 “식약처·보건복지부가 그간 미온적이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국회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논의를 본격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반대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이 두드러지다 보니 의원들이 압박감을 느끼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는 만큼 더는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혼외 출생자들이 출생 등록될 권리를 침해해 2023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가족관계등록법도 법사위에 묶여 있다. 현행법상 미혼부가 출생 신고할 방법이 규정돼 있지 않아 아동들이 건강보험, 아동수당 등 기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법사위 전체회의에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당시 여당 위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과 지귀연 부장판사의 룸살롱 향응 의혹 등을 제기하며 여야 공방이 벌어져 별다른 토론 없이 산회했다.

개헌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인 국민투표법 개정도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 후 12년간 법적 공백 상태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6·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선 그에 앞서 국민투표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설 전후를 시한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선 행정통합특별법 등 다른 쟁점법안 처리에 밀리는 모양새다.

국민투표법을 비롯해 행안위 소관 법률은 8건(위헌 5건, 헌법불합치 3건)이 대기 상태다. 야간 옥외 집회 금지와 관련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개정되지 않았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11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 시한(오는 28일)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헌재는 2024년 8월,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만 정하고 2031~2049년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은 ‘환경권 침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NDC를 최근 설정했지만 위헌성을 불식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는 개정 시한을 3주 앞둔 지난 3일에야 공론화위를 출범시켰다.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책임은 여야 모두에 있다. 민주당이 쟁점 법안 처리를 주도하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이어가는 대치전이 반복되면서 민생 법안들은 도외시됐다. 다만 현재의 여대야소 국회에선 여당 책임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 법사위 관계자는 “(일부 법사위원들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 굉장히 정치적인 법안들만 (우선 처리)되는 문제가 이어져 심각하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지지층의 발판 위에 선 정청래 민주당 대표 입장에선 합당이 무산되면서 (입지가) 흔들리니 국민투표법같이 재미없는 법안보다는 사법개혁안 추진을 강조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헌법불합치·위헌 판결이 난 법을 이번 국회에서 개정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건 지금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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