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아미시 마을에 갔어. 아미시는 종교개혁시기 반체제 운동의 한줄기인 재세례파 운동으로 오늘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지. 일부는 기계에 쏠린 문명을 거부하고 이른바 미국판 ‘나는 자연인이다’ 집단을 이루며 살아. 아미시를 찾아가는 도로는 아스팔트 길이었는데, 대관절 마차가 심심치 않게 보였어. 마차는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야 제격인데 말이야.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흰 수염을 너풀대는 마부가 ‘이랴 이랴~’ 마차를 몰고 지나가덩만.
가수 명국환의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지. “벤조를 울리며 마차는 간다. 마차는 간다. 저 산골을 돌아서가면 내 고향이다. 이랴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구름이 둥실대는 고개를 꾸불꾸불 넘어간다. 말방울 울리며 마차는 간다.” 히잉히잉~ 말울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아미시에게 말은 개만큼 친근한 반려동물이래. 아미시들은 말을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는 친구’라 부른단다. 어쩌면 진짜 친구는 내 어려움을 알고, 대신 짐을 나눠서 져주는 이가 아닐까.
말을 사랑하는 종족은 아랍 사막에도 산다. 아랍어 가운데 ‘야르부니’란 아름다운 밀어가 있는데, 사랑을 표현할 때 쓴대. “그대가 나를 땅에 묻어주세요”라는 얘기. 당신 없이 살 수 없으니 나보다 먼저 죽지 말기를. 나보다 오래 살아서 내가 죽으면 양지뜸에 고이 묻어달라는 당부의 말이래. 아랍 상인들은 말이 죽으면 고삐를 풀고 건초를 가져다가 얼굴을 덮은 뒤 물 한 모금 입에 적셔준대. 배를 채우고 하늘나라에서 실컷 자유롭게 달음질치며 살라는 작별인사로 그리한대. “정든 님 기다려주는 내 고향이다. 이랴~ 어서 가자. 청포도 무르익은 언덕을 꾸불꾸불 달려간다. 말구비 장단에 마차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