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붉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이 시작되었다. 작심삼일했다면 ‘다시’ 심기일전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다시’라는 단어에는 적잖은 희망이 담겨 있다. (물론 다시 침몰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숙고할 수 있다면, 다시 행동할 수 있다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겠지만 사람들은 ‘다시’를 남발하곤 한다. 낮고 가난한 사람들, 실의에 빠져 힘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의 환경이나 상황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다시 해보는 거야’ ‘다시 힘을 내보자’ 등등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선거철이 다가오면 지겨울 정도로 ‘다시’가 난무한다. 표를 얻어야 하는 사람은 ‘다시 한번 부탁한다’고 읍소하고, 표를 주는 사람들은 종종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투표할 때가 많다. 다시만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단어도 드물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전란으로 갈 길을 잃은 조선을 다시 세울 방법을 제시한다. <시경>에 등장하는 징비(懲毖)라는 말은 ‘이전을 반성하고 삼가다’의 의미를 담은, 즉 다시 일어서는 힘을 품은 말이다. 류성룡은 왕의 실정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백성 몰래 한양에서 도망친, 곧이어 평양성마저 버리려던 선조의 행적은 <징비록>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그런 임금과 권신들을 향한 백성들의 거침없는 욕도 담겼다. “너희가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백성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조세제도를 바꾸고, 노비가 양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자는 류성룡의 혁신 방안들은 결국 기득권층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조선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놓쳤다.
최근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 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어린 왕 이홍위의 ‘다시’ 시작된 삶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의 몇줄 기록 위에 상상력을 덧붙인 이 영화는, 비록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망정, 삶의 기쁨을 회복한 단종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식음을 전폐했던 노산은 자신의 끼니를 때마다 챙기는 백성들과 겸상하면서, 비록 왕위에는 다시 오르지 못할지언정, 백성과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왕’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은 다시 벼린다. 이름 없는 백성으로 살아야만 하는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긴 패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장면은 두드러지진 않지만, 이 영화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당대에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류성룡의 개혁정신이 실패한 건 아니다. 류성룡은 위로는 세도가들 비판에 주저하지 않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데 전력했다. 그것만으로도 류성룡의 역할은 컸다. <징비록>은 지금도, 스스로의 삶을 다잡는 일이나 나라를 운영하는 마음가짐을 밝힘으로써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다만 ‘다시’ 무언가를 하려면 당장 시작하고, 더더욱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 ‘제1판에 대한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의 훌륭한 것을 받아들여 우리의 유산이라 부르고, 나쁜 것은 폐기 처분하여 그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잊혀질 죽은 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흔한 미사여구가 아닌, 현실에서 실현되는 완성형 문장이어야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