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1억3000만원.’
설 연휴 밥상에 올라온 주제 중 하나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은 SK하이닉스의 ‘슈퍼 성과급(이익분배금·PS·Profit Sharing)’이었다. 올해 2월 초 지급된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초과이익분배금(성과급)은 기본급의 2964%다. 기본급의 약 30배라는 말이다. 월급이 500만원이라면 1억50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의 전 직원 수와 영업이익으로 단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성과급은 1억3000만~1억4000만원 수준이다. 반도체 호황과 HBM 판매로 영업이익이 50조원에 육박했기에 가능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에 딱 좋은 이 수치를 두고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의대 쏠림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숫자를 보여줘야 훌륭한 이공계 인재가 의대를 가지 않고 과학과 공학 계열에 지원할 유인이 생긴다는 해석이었다. 중국 인재들이 의대가 아닌 공대를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입시 자극제 된 하이닉스 성과급
등록률 보면 여전히 ‘의대’ 선호
노동자와 기업 이익 나누지 않고
리스크만 공유하는 현실 벗어나야
이미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은 입시에서 일정 부분 ‘자극제’가 되는 듯 보인다. 한 사설 입시업체 조사에서 SK하이닉스의 취업이 보장된 고려대·서강대·한양대의 반도체 계약학과 수시 지원율은 전년도보다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계약된 학과까지 확대하면 지원율이 더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등록률을 보면 상황이 다르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이 반도체 계약학과와 의대에 중복 합격하면, 대다수 반도체 계약학과를 포기하고 의대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됐는데도 말이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을 지닌 일부를 제외하면 안정적 고소득을 보장받는 의대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굳건한 ‘의대 쏠림’ 장벽에 조금이라도 ‘틈’을 내려면 국가기술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만으로는 안 된다. 필요한 건 놀랄 만한 경제적 유인이라는 게 기업 관계자 이야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급’은 상여금·격려금·보너스가 아니다. 직원 개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제도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노동자와 공유한다는 이익공유제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직접적으로 노동자와 나누면 동기를 부여할 수 있고 생산성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차원에서 미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된 제도다.
이런 방식의 성과급이 유독 화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성과배분제를 채택하는 기업은 100곳 중 7곳도 채 되지 않는다. 연 1회 실시하는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부가조사’(지난해 6월 기준·2만개 사업체 표본)를 보면,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회사는 전 산업 기준 6.5%에 불과하다. 절대다수(93.5%)의 회사는 도입하지 않고 있다.
시행하는 곳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기업이거나 일부 중견기업이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선 6.4%만 도입했으나 300인 이상에선 43.8%가 적용하고 있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도입률은 단 2.6%에 불과하다.
성과배분제 도입 여부를 가르는 또 다른 중요한 변수는 노동조합 유무다. 노조가 있는 회사 중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곳은 절반(52.8%)을 넘지만, 노조가 없는 회사 대다수(95.7%)는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인 이익을 자발적으로 노동자와 공유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소기업에서 이익공유제 형태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의 기록적 성과급도 2021년부터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마련하고, 지난해 9월 노사가 성과급의 상한선(기본급의 1000%)까지 폐지하기로 합의하면서 나올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엄청난 금액을 보노라면 K자형 양극화 경제구조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노동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진정한 성과급 지급은 환영할 만하고 확산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기업이 호황을 누릴 때 이익은 오롯이 회사와 대주주가 가져가고, 불황이 찾아오면 노동자만 위험을 지는 구조에 익숙했다. 호황기에 성과급이나 격려금 지급이 회사 마음대로였다면, 불황기에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나 해고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이익은 공유하지 않고 리스크만 공유하는 기업 현실을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임지선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