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 주는 기계
잉그리드 샤베르 글·라울 구리디 그림
김보희 옮김 | 지구의아침 | 36쪽 | 1만7000원
부캥빌 주민들은 책을 사랑한다. 이들에게 책은 일상이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캥빌 주민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들은 책을 ‘듣는’다. 도서관 2층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 책을 골라 커다랗고 새빨간 기계에 집어넣은 뒤 주렁주렁 달린 줄 끝에 귀를 대고 앉아 로봇이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
콰앙, 촤앙, 끼익. 맙소사. 갑자기 기계가 고장이 나버린다. 새카만 연기를 뿜어낸 기계는 복구 불능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책을 들을 수 없다니.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시장님이 대책을 내놓는다. 책 읽어주는 기계가 고쳐질 때까지 시몬 할머니에게 가보라는 것이다. 시몬 할머니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책 읽어주는 기계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책장을 직접 만지고 종이 냄새를 맡고 책을 ‘읽기’ 때문이다.
“할머니, 제발 책을 읽어주세요!” 초인종을 눌러대며 애원해도 할머니는 묵묵부답. 사람들의 보챔은 점점 심해지고 짜증이 잔뜩 난 할머니는 빗자루를 휘두르며 말한다. “난 당신들의 새 기계가 아니에요! 책 읽는 법을 다시 배우기만 하면 되잖아요!” 책을 읽으라니. 책 읽는 법을 배우라니.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할머니 주변을 우물쭈물 맴돌기만 한다. 그러다 마침내 사람들은 말한다.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는 부탁을 받아들인다. 글자를 익히며, 글자와 단어와 쉼표들을 합쳐가며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법을 배운다. 도서관은 다시 문을 열었고 책들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책 읽어주는 기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거대한 몸은 산산이 분해되어 책 읽는 사람들의 엉덩이 아래에 깔린다.
책을 읽는 이들은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시몬 할머니처럼 직접 페이지를 넘기고, 자기만의 속도로 이야기를 음미하는 사람들. 기술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종이책의 물성을 느끼는 사람들. 그런 독자들을 위해 글자와 글자 사이를 오가며 텍스트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구려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