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다.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과 ‘전한길 뉴스’의 발행인 전한길이 맞붙는 부정선거론 토론회가 취소됐다. 토론회를 진행하기로 했던 종편채널이 심의를 이유로 내세워 방송할 수 없겠다고 개혁신당에 통보했다고 한다. 만약 예정대로 열렸다면 이준석과 4인의 부정선거론자 간 대결이라는 희대의 매체 사건을 넘어, 이 나라 방송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편성기획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토론을 주관해서 진행하겠다는 용기 있는 방송사가 나오길 바란다.
이 토론회를 보수 진영 내 싸움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얼핏 부정선거 음모론으로부터 보수 시민을 구해야겠다는 열망과 그동안 ‘오해받고, 억압받는’ 부정선거론을 입증해보겠다는 열망이 맞붙는 대결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부정선거론은 우리 공화국의 폐부에서 썩는 냄새를 풍기며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나라에는 2010년 21대 총선 이래 주요 선거가 조작됐다고 굳게 믿는 자들이 있다.
내란 수괴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지만, 우리는 아직 12·3 내란의 근접 동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2023년 겨울 내란 핵심 세력이 부정선거를 이유로 내세워 친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했고, 바로 그 정당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선관위 서버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려고 작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정선거론이란 그냥 두고 보면 우스꽝스러운 음모론 중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정치적 동원을 위한 구실로 활용하려는 자들에게 그것은 공화국의 민주적 정당성의 핵심을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담론적 자원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정선거론은 뜻밖에도 하나의 정연한 논변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갈래의, 서로 얽혀서 때로 모순되기도 하는 서술, 의문, 그리고 한탄과 분노의 연결망이다. 그것의 핵심에는 경험적 관찰, 이론적 주장, 그리고 동기화된 이념적 전제가 녹아 있는 아말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부정선거론을 ‘가짜뉴스’로 치부해서 그것을 전파하는 자를 처벌하겠다는 기획은 하책 중의 하책이 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부정선거론을 이루는 어떤 관찰은 사실이고, 어떤 주장은 일리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 배경을 이루는 이념적 동기는 반박될 수 없는 종류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론 유포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심지어 부정선거론자의 정치적 기획을 도와준다. 그들은 말한다. 부당하게 권력을 탈취한 자들은 결국 정당한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응답하지 못한 채, 경찰과 법원을 동원해서 발언의 자유를 탄압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따라서 토론이 필요하다. 일단 보수 정객들 간 토론회로 열려도 좋겠지만, 진보적 논객은 물론 중립적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면 더욱 좋다. 일단 부정선거론자가 제기하는 의혹에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응답하는 일이 필요하다. 덧붙여 부정선거론자에게 선거가 타락했다고 믿는 이유를 정연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그 이유를 함께 검토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떤 내용의 증거를 확보하면 부정선거라고 선언할 수 있는지 합의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 합의는 다음 선거에서 선관위와 시민이 함께 주의해서 감시해야 할 사항이 될 것이다.
나는 부정선거론을 둘러싼 토론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본다. 보수 진영 내의 난상 토론은 진 쪽이 멸망하는 사망유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핵심 의제를 정리하고 필요한 증거를 서로 요구하는 수준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 토론을 이어받는 토론들이 각종 매체에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전문적 진행과 실시간 중계 역량을 갖춘 방송사가 토론의 장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또 다른 내란의 뿌리가 우리 민주정의 폐부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