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수선은 갈고닦고 탐구하며 표현하는 일”···‘수선 조형’하는 사람 박정원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수선은 갈고닦고 탐구하며 표현하는 일”···‘수선 조형’하는 사람 박정원

입력 2026.02.23 15:34

수정 2026.02.23 17:53

펼치기/접기

박정원 명함은 종이가 아니라 헌옷 조각이다. 이메일 주소 등을 새긴 스탬프로 찍었다. 이 명함은 작업 일부다. 그는 헌옷으로 새로운 형태의 옷을 만든다. 수선은 “대체 불가능한 옷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 예로 아무리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와이셔츠 얼룩에 프릴을 달면 다른 옷이 된다. 수선 범위는 더 넓다. 헌옷을 해체해 가방, 컵 받침, 쇼파 커버, 신발, 모자에 천과 모래, 물감을 뒤섞은 ‘직물 액자’도 만든다. 직업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수선 조형을 한다”고 답한다. 그 수선 조형에 관한 단상을 <직물을 잇고 조각을 수선합니다>(포르체)에 담았다.

박정원씨는 자신을 수선 조형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수선은 고치고, 갈고닦고, 탐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지난 4일 서울 금호동 작업실에서 수선 조형을 할 헌옷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목 기자

박정원씨는 자신을 수선 조형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수선은 고치고, 갈고닦고, 탐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지난 4일 서울 금호동 작업실에서 수선 조형을 할 헌옷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목 기자

언뜻 실용 책 같다. 수선에 관한 실용 팁을 넣었다. 서점 도서 분류도 ‘취미/실용/스포츠’ 하위 항목인 ‘자수/바느질’이다. 읽다 보면 ‘인문학/에세이’로 분류해도 좋을 법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박정원은 수선이란 말의 근원을 따지며 그 의미를 확장한다.

지난 4일 서울 금호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수선의 정의를 두고 “실과 직물로 헌옷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한자어 수선(修繕)을 곱씹어보며 내린 정의다. 기울 선(繕)에서 ‘실(糸)로 기워 더 좋게(善) 하는 행위’를 확인했다. 닦을 수(修)는 갈고닦고, 탐구하며, 고치는 일을 가리킨다. “아귀를 맞춰 작동하게 하는 수리(修理)랑 다르죠. 수선엔 정해진 보편의 이치나 형태가 없어요. 실을 써 더 낫게 하면 그만입니다.” 수선할 때 옷을 처음 샀을 때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는 수선을 “비정형을, 무작위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표현하는 일”로 본다. 책엔 이렇게 썼다. “나는 옷감을 기우는 수선이라는 행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돈 주고 사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세상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했다.”

박정원의 수선은 수선집에서 흔히 하는 작업에다 형태를 바꾸는 리폼, 자신을 표현하는 창작과 예술 행위를 포괄한다. 그는 수선을 “범위의 제한 없이 옷을 고쳐 새로이 하는 자유롭고 포용적인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 일로 먹고 산다. 헌옷으로 만든 갖가지 것들을 온오프라인에서 판다. “팔리는 걸 만들어야지 하는 걱정보단 내가 재미있는 걸, 내 자신을 드러내는 걸 만들어야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업실에서 ‘헌옷으로 콜라주 하는 워크숍(죠각 워크숍)’도 진행한다. 가끔 수선 특강도 나간다. 수강생들에게도 “개성을 지니는 게 뭔가 창피하거나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내가 자신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워크숍은 이런 드러내기를 하는 시공간“이라고 했다. “‘그냥 만들었어요‘ 같은 가벼움을 찰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고 했다.

이 수선 일을 한 뒤로 ‘새옷’을 산 적이 없다. 한때는 패스트패션에 빠졌다. IT업체에서 일할 때, 패션제풀을 만들어 팔 때다. “회사 다닐 때 누가 예쁜 옷 입으면 물어봐서 사고, 또 친구 따라 옷집에 갔다고 사고 그랬죠. 회사도 쇼핑몰, 백화점도 많은 명동이었거요. 그때 산 온 중 자주 입은 건 몇 벌 안 되요.” 충동 구매한 옷들은 지금은 ‘수선 조형’의 좋은 재료다.

책은 패스트패션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패스트패션은 사계절 옷에다 봄 여름 사이, 가을과 겨울 간절기 옷까지 사이클이 돌아가요. 업체들은 필요하지 않아도 만들어 광고하고, 소비자들은 필요하지 않아도 사서는 또 버리죠. 과잉 생산, 과잉 폐기라는 악순환에 빠져든 거죠.” 책엔 “패스트패션은 빠른 유행을 수용하고픈 소비자를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팔기 위해 기업이 만들어 낸 시스템 전반이었다” “트렌드는 패션 시장이 만들어 낸 이상형의 교체 주기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박정원은 “원래 몸을 보호하는 도구인 옷이 우상화의 도구가 됐다”고도 말했다. “패스트패션 사회가 되면서 우상화를 스스로 하기가 훨씬 쉬워진 거죠.”

박정원의 수선 조형엔 경계가 없다. 헌옷으로 못 만들 게 없다. 사잰은  헌옷과 헌 목장갑으로 만든 장식등. 김종목 기자

박정원의 수선 조형엔 경계가 없다. 헌옷으로 못 만들 게 없다. 사잰은 헌옷과 헌 목장갑으로 만든 장식등. 김종목 기자

박정원은 “시장이 정해 준 이상형이 아닌 나의 이상형을 조금씩 알아 가고, 점점 나만의 물건과 정체성을 찾아가며 이윽고 패스트패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패션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며 패스트패션의 현실을 깨달았다. 이 일을 계속할지 고민했다. “어느날 스마트폰 액세서리 드로잉을 온라인에 올렸는데, 누가 그걸 만들면 사겠다고 하더군요.” 원단을 구해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았다. 그 즈음 물건을 팔거나 사지 않아도 재봉틀로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의 찢어진 옷을 기워 주고 돈을 조금 받아 밥 한 끼를 해 먹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곁의 물건을 하나하나 고쳤다. 오래된 재봉틀도 하나 샀다. “판매할 의지라기보다 만드는 의지”로 헌옷 쇼핑몰을 창업했다. “그것이 팔리든 말든 무언가를 만들어 가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고 했다. 비싸게 팔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헌옷 에코백은 수천원대에 팔기도 한다. 그는 “매출이 부족하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병행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단을 구하러 간 동대문 시장에서 또 다른 현실을 깨달았다. 버클만 만드는 사람, 단추만 만드는 사람, 단추 문양 도안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일로 먹고 살았다. 동대문 봉제 생태계에 빠져들었다. 동대문역사도 공부하며 조선시대 훈련도감 군사들이 국가에서 받은 포목을 팔다 보니 동대문 주변에 포목 시장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호기심으로 미싱의 역사, 천의 역사, 패션의 역사에 갖가지 섬유 소재의 특성도 공부했다. 책은 이런 공부가 쌓인 결과다.

부제는 ‘저소비자 생활자를 위한 나만의 옷 수선’이다. 박정원은 ‘저소비’나 ‘친환경’이란 말을 내세우는 걸 주저했다. “나부터가 폴리에스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헌옷과 대안 소재를 주로 사용하지만 결국 만들어 판매하면서 소비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자책도 해요. (탄소 발자국 남기는) 여행도 자주 가고요.”

박정원은 유기농 면을 써도 섬유를 염색하고, 물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환경은 환경을 위한 수선서비스는 소비로 이어지는 마케팅이 되죠. 친환경 원단 자체가 친환경은 아니에요. 석유, 전기를 써야 하는 일이니까요. 석유를 얼마나 덜 써야 친환경일까 하는 생각이 들죠. 우리가 말하는 친환경이란 자연에 그나마 덜 해롭게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수선도 “소비를 줄이기보다 폐기를 미루는 행위에 가깝다”고 본다. 박정원은 다른 의미에서 환경을 역설한다. “개인들의 지구적인 고요한 실천”이 결과적으로 “지구를 위하는 길과 맞닿”았다고 본다. “워크숍 멤버들은 환경을 위해 헌옷을 찾아낸 게 아니라, 워크숍 실습을 위해 헌옷을 찾아내고 나서야 안 입는 옷이 많다는 걸 알아차리죠. 노동의 고귀함을 알려고 수선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돌린 미싱 기계의 섬세함에 손이 휘둘리고 나서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옷 무게를 알아차립니다.” 그는 “속도에 강요당하지 않는 순박하고 고요한 실천으로 직물과의 공생에 이른다”고 햇다.

패스트패션과 환경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속임수를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할 때, 불필요한 소비가 줄고 불편한 진실을 둘러싼 우리 주변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너무 거대해 접근하기 어려웠던 환경이라는 그 무엇은 비로소 내 곁의 땅과 풀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려면 온갖 재료와 다양한 만듦과 쓰임을 깨달아야 한다. 책엔 “재료와 존재를 상상하고, 손으로 일구는 원초적 행위로부터 수선, 그리고 환경은 시작된다”고 적었다.물건에 애정을 갖는 일도 중요하다. “물건을 애정하는 태도는 빠르게 흘러가는 산업사회의 불필요한 유혹으로부터 나를 덜 흔들리게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필요로 할까, 이를 아는 것으로부터 내 물건의 연대기는 시작된다.” 박정원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뒤로도 15년을 수선하며 사용한 부츠를 지금도 신는다. 그는 “나만의 물건 사용이란, 내 상황에 적합한 만듦새의 제품을 심사숙고해 선택하고, 선택한 제품을 마음껏 활용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마음껏 활용하는 일은 자연스레 대상을 애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아끼고 애정을 주면 그게 아름다운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수선을 거치면 애착과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수선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몸의 장점을 발견하여 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내 몸이 혐오로 어지럽혀지지 않는 둥그런 방법이다. 이것은 내 체형에 맞게 실로 기워 꾸미고 고치는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몸은 드러나고, 나는 받아들이며, 결국 친애한다.”

“수선은 갈고닦고 탐구하며 표현하는 일”···‘수선 조형’하는 사람 박정원

박정원은 수선에 빠져 산다. “온종일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려 한다.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지니려 가입한 ‘1365자원봉사’ 활동 때 고독사한 이의 무연고 장례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이런 결심을 했다. 그는 망자의 삶과 죽음, 고독을 생각하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살아갈 용기를 얻지 하는 생각까지 나아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 닿은 게 죽을 때까지 나를 지탱해 죽어서도 나를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고,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도 즐기는 마음,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 탐구”인 내적 유희도 고민했다.

박정원은 이 죽음에 관한 단상도 ‘실용’으로 분류된 책에 넣었다. 이런 저런 단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지난해 4월 책 첫 편집자가 인스타그램 글을 보고 연락해 출판을 제안했다고 한다. 다른 글도 꾸준히 쓰는 게 있다. 바로 소설이다. “수년 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투고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글쓰기도 그에겐 갈고닦고, 탐구하는 수선과도 같은 일로 보였다.

  • AD
  • AD
  • AD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