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했던 사회학과 제자들이 모두 졸업을 했고, 근황을 전해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 A를 집 근처에서 만났다. 전국 사회학과 34곳 중 19곳이 수도권에 있다. 본인이 배우고 싶은 스승을 찾아보다가, 서울에 있는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문제는 주거다. 자취방 찾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대학가가 가깝고 자취와 하숙집이 많아 주거비가 저렴하던 동네를 추천해줬는데, 이제는 대부분 재건축·재개발 대상이 되어서 괜찮은 집을 구할 수가 없다. A가 마산에서는 9평 원룸을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30만원에 구할 수 있었는데, 서울에선 5평 원룸에 보증금 5000만원, 월세 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고향에 정착하겠다는 제자와도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늘 우수한 성적을 받던 여학생 B는 하고 싶은 일 찾기를 포기했다. 대신 지역에서 일자리 찾기가 비교적 수월한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하고 지역의 청소년 복지시설에서 10대들에게 멘토링을 하고 있다. 특별히 서울을 희망하지 않고 아이들을 좋아하니, 사회복지사 1급을 따서 청소년 관련 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줄어가는 지역에서 청소년 복지시설이 많이 줄어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 분야는 지역 불문하고 전 산업 평균보다 임금을 10% 덜 받는다. 나는 B에게 제안할 고임금 지역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경남의 1년차 사회복지사는 수당으로 연 108만원을 받고, 서울은 0원이라고 하는 경향신문 보도가 떠올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공·직업·주거 격차 해소가 관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다양한 형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현 정부는 역대 정부가 써오던 지역균형발전이란 말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이라는 전략을 내세웠다. 5극3특의 다극 체제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 수도권과 비견할 만한 메가시티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극 체제의 성패는 혁신 생태계 구축 못지않게, 지방 청년들이 체감하는 전공·주거·직업 격차를 얼마나 완화하느냐에 달렸다.
우선 지방대의 전공 다양성을 살려야 하고,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AI가 중요해졌지만, AI만 배워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거점국립대를 제외하면 비수도권 인문학과 사회과학 계통의 모든 학과는 코로나19 때인 2021년 이후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자연계열 학과 역시 급격히 수축됐다. 2024년 경남여성가족재단 연구는 지역의 청년 유출 요인으로 지역 내 ‘희망 전공의 부재’가 중요해졌다고 전한다. 진학을 서울로 하면 일자리도 수도권에서 찾게 된다. 고학력화를 감안하면 대학원 전공 다양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전공 다양성을 어떻게 구축할지를 개별 대학이 선택하긴 어렵다. RISE나 글로컬 등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것과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지역 내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재정 보장도 필요하다.
두 번째로 한시적으로라도 서울에서 지내야 하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 대해 답이 필요하다. 아파트 다수 보유자에 대한 세제 혜택과 유동성을 축소하는 방향이 부동산 정책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공급 측면은 ‘아파트 공급’에 국한되고 있다. 비아파트 저렴주택으로 역세권 청년안심주택과 매입임대주택이 있지만, 청년안심주택은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 지역주민 반대로 2025년에만 1300여채 공급이 취소되었다. 매입임대주택은 서울시의 소극적 태도로 2022년부터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 금전적 여력이 없는 상경 청년은 관리·수선이 지연된 소형 주거로 밀려나기 쉽다.
수도권 맞먹는 대도시가 필요조건
청년이 언제든 ‘기회 많은 지방’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더라도, 당장은 서울에 와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때 최소한의 주거복지를 보장하는 장치가 도심 내 저렴주택의 양이다.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매입·리모델링·장기임대 방식으로 저렴주택 재고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균형발전은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당위로 풀릴 수 없다. 많은 청년들이 전공 다양성, 고부가가치 일자리, 촘촘한 대중교통망, 주거의 안전망, 즐길 거리까지 묶인 ‘배움터’이자 ‘직주락’을 기준으로 생활권을 정한다. 그중 대부분을 충족하는 서울을 준거로 삼는 청년에게, 비수도권이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제안하는 일이 지역균형발전의 본질적 과제다. ‘좋은 마을 만들기’(자치분권)가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느끼기에 여러모로 수도권에 ‘꿀리지 않는 대도시’(경쟁력 있고 대등한 지방)가 필요조건이 되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