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질병의 문제는 개인 취향이 아니라 사회심리서 생겨난다
그것에서 벗어날 길은 시간을 바쳐 경험을 쌓아야
초대량 소비 시대에 생산실력은 최고의 자원
그것은 빠르게에 대한 저항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빠르게에 대처하는 지혜로 느림을 꼽곤 하는데
난 천천히를 내세우고 싶다 천천히란 느긋하단 뜻이다
여기엔 실천적 함의가 크다
앞으로는 천천히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실력이다.
요즘 들어 매사에 참을성이 없고 조급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건 ‘빨리빨리 코리아’와는 상관없는 현상이다. 핵심은 전 세계의 현대인이 걸린 ‘빠르게’(fast)의 ‘인지질병’이다. 이것이 인류 문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인지란 정보를 습득, 저장, 인출, 사용하는 전 과정으로, 사고, 지각, 주의력, 기억, 추론, 판단, 학습 등 인간의 마음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역사를 통해 인간의 인지 능력은 향상되어왔지만, 지금 위기가 닥쳤다. 인지질병으로 인해 실력이 줄어들고, 생산 능력은 감소했다.
주의력이 높고, 오래 집중하고, 잘 견디고,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것은 긍정적인 역량, 그야말로 ‘실력’(potentia)에 속한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실력은 조금도 숨어 있지 않은 채 온통 발현되는 힘이라고 말한다. 가끔 ‘이번에는’ 실력 발휘를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말이다. 발휘된 만큼이 그때의 실력이다. 물론 다음에 발휘될 수 있는 실력은 달라질 수 있다. 실력을 쌓으면 더 커질 수 있고, 방심하면 줄어들기 십상이니까.
일본의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가 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2022)은 영상물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대신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와 요약본 시청을 통해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분석하며 화제가 되었다. “누구도 좋은 음악을 빨리 감기로 듣지 않는다. 하지만 영상을 1.5배속으로 시청하거나 대화가 없고 움직임이 적은 장면은 주저 없이 10초씩 건너뛰며 시청하는 사람은 많다.”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내 시간이 아깝다’로 요약된다. 따라서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시성비’(time performance) 즉 시간 대비 효능감이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몇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런 세태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인을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정직하지 않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어디에 쓰고 있을까? 결국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 등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쇼트폼 콘텐츠를 넋 나간 듯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상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영상물을 값싸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볼 수 있는 영상물이 넘쳐날 정도로 많아졌으며, 정액제 아래에서는 더 많이 소비할수록 이익이라는 뷔페식당 마인드가 자리 잡았다. 이런 조건에서 최대한 빨리, 많이 소비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이런 사회심리적 증상의 하나로, 영화학과 학생이 장편영화 한 편을 보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큰 문제는 과정과 깊이가 사라진 것
두 방향으로 질문이 제기된다. 우선 콘텐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와 콘텐츠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영상 콘텐츠의 소비 행태는 돌이킬 수 없게 변한 걸까? 느긋하게 감상하라는 건 시대착오일까? 현대인은 왜 그렇게 하면서까지 콘텐츠를 하나라도 더 챙겨 봐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을까? 이 질문 방향은 콘텐츠 산업이라는 영역에 한정된 것으로, 세대의 문제를 넘어 현대사회 전체의 증상이라면 진단과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다른 질문은 이런 변화를 삶의 상실과 관련짓는다. 작품을 음미하며 기쁨을 느끼는 대신, 콘텐츠를 오락과 정보로서 빠르게 소비할 뿐이라는 것. 가령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범인을 찾아가는 끈질기고 섬세한 과정을 즐기는 과정이지 빨리 범인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첫 페이지에 누군가가 범인의 이름을 적어놓았다면, 그보다 김새는 일도 없다.
그러나 최근의 트렌드는 ‘스포 환영’이다. 미리 내용을 알고 나서 볼지 말지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성비 소비는 콘텐츠를 온전히 소화한 것 같은 심리적인 가짜 포만감을 불러온다. 이것은 요령 있는 능동적 시청일까? ‘태어났다가 죽더라’는 줄거리로 요약된 삶보다 중요한 건 여백을 담은 삶의 디테일이 아닐까? 삶의 희로애락은 구체성 속에 있다. 만남과 헤어짐에도 무수한 사연이 있다. 우리는 그걸 보며 함께 울고 웃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속도와 정보와 효율이란 말인가?
이 현상을 기술과 인지 활동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디지털 기술 및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인간의 인지 구조, 뇌 배선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정과 깊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콘텐츠를 ‘경험’하지 않고 ‘처리’한다. 긴 글을 읽지 않고, 영화를 축약해서 보고, 책을 음미하지 않는다. 이제 주의력은 산만하고,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천천히 기다리는 걸 못 견디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얄팍해졌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구조가 바뀌었다는 징조다. 우리의 행동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졌다’는 의미다. 현대인의 인지는 느리고 고된 과정을 견디지 못하게 변해버렸다. ‘옛날이 좋았다’는 낭만적 향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인지건강’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경보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지질병은 인간이 전에는 할 줄 알던 일을 더는 못하게 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시성비를 받들며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와 요약본 시청을 하는 현대인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이 신성시하는 속도와 정보와 효율의 결과는 무엇일까? 덧없고 순간적인 재미, 더 많이 수집했다는 우월감, 화제와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과시와 허영심, 그 뒤로 슬쩍 찾아오는 허탈감? 이들은 얄팍한 쾌를 누리는 대가로 훌륭한 소비자로 길들여진다. 이와 함께 이들은 점점 더 잘 소비한다. 하지만 생산자로서의 실력은 점점 퇴화한다. 무릇 실력은 훈련 과정을 잘 견딤으로써 길러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리 감고 건너뛰며 요약본을 본들 무엇하랴. 이들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한다 해도, 정보를 종합하고 응용하는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단편적인 정보만 쌓일 뿐, 의미 있는 연결은 일어나지 않으며, 생산과 창작으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정보의 정밀도와 깊이를 파악하지 못할진대, 정밀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많은 정보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인증샷일 뿐이다.
천천히가 시대 거스르는 진짜 실력
문제는 시성비를 추구하는 인지질병이 개인 취향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기술 구조와 이로 인해 형성되는 사회심리에서 생겨난다는 점이다.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콘텐츠, 언제라도 거기에 접근하게 해주는 통신망과 스마트기기, 소비자의 지갑을 노리는 기업들의 경쟁, 이런 와중에 쫓기듯 시성비를 누려야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 이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벗어날 길이 있기는 한 걸까?
시성비를 추구하기보다 시간을 바쳐야 한다. 실패를 거듭하며 틈을 메꿔가는 과정,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이라고 한다. 경험이라는 스승은 공짜가 아니다. 경험은 낭비가 아니며, 압축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경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를 만드는 건 과정이요 시간이다. 학습이 성공하려면 주의하고, 집중하고, 잘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초대량 소비 시대에, 생산하는 실력은 최고의 자원이다. 생산 실력은 ‘빠르게’에 저항함으로써만 길러질 수 있다. 그것은 꾸준한 근력 운동과도 비슷하다.
‘빠르게’의 시대를 대처하는 지혜로 ‘느림’(slow)을 꼽곤 한다. ‘느림’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뜻으로, 중립적 개념이다. 나는 ‘느림’보다 ‘천천히’(leisurely)를 내세우고 싶다. ‘천천히’란 ‘급하지 않고 느긋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실천적인 함의가 크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구절이 있다. ‘천천히’와 ‘서두르다’는 겉보기에 서로 모순된다. 하지만 천천히 해야 실속이 채워진다.
앞으로는 천천히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실력이다. 모두가 빠르게의 인지질병에 걸린 시대에, 천천히야말로 시대를 거스르는 진짜 실력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소수 엘리트에게만 허락되는 몫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