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이홍이 말하는 ‘폐기의 공간’
2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김이홍 교수가 폐기물이 처리되는 공간을 도시와 공존시키는 것에 대한 책 <폐기의 공간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리는 매일 쓰레기를 버리고, 쓰레기는 어디론가 이동한다. 쓰레기 수거·분류·소각·매립·재활용 과정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쓰레기 처리 과정이) 시간이 갈수록 더 눈에 띄지 않도록 도시 외곽으로, 지하로 숨겨지고 있다. 이러한 이동 경로와 풍경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일까? 버려지는 물건을 끊임없이 만들고 폐기하는 일에 점점 더 스스럼없어지는 듯하다.” 김이홍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사진)는 최근 펴낸 책 <폐기의 공간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김 교수는 기피 시설로 여겨지는 분리수거장, 적환장, 소각장, 매립지 등 폐기물 처리시설이 ‘도시의 운영을 떠받치는 중요한 시스템’이자 ‘인간 삶의 단면이고 우리 사회의 얼굴’이라고 평가한다. 그 필요에도 불구하고 폐기물 처리시설은 도시에서 존재를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폐기물과 도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물었다.
김 교수가 폐기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경기 화성시에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인 수퍼빈 아이엠팩토리를 지으면서다. 2023년 준공된 이 공장은 설계사무소 ‘김이홍 아키텍츠’가 처음 건축 의뢰를 받은 공장이다. 폐플라스틱으로 털실 등의 원료인 플라스틱 플레이크를 만드는 공장은 기계를 돌리는 공간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정원이 둘러싼 U자형의 건물을 커다란 창을 통해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공정무역카페, 유기견보호소, 전시공간도 마련됐다.
아이엠팩토리가 ‘공장 같지 않은 공장’으로 탄생한 건 사람을 중심에 두면서다. 김 교수는 “공장은 기능에 충실하면 되는 건물로 여겨지고 디자인을 접목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발주처가 일하는 사람들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 플라스틱 순환 과정을 볼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접목할 공간을 원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담아내는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다른 시설에 가보니 악취나 소음이 심각했다. 근로환경이나 기계로부터의 보호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엠팩토리에는 채광을 위해 창을 곳곳에 놓는 등 (노동자를 위한) 장치들을 조금씩 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쓰레기를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렴하게 처리하려고 하면 폐기라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한다. “쓰레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바깥으로 밀어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들여올 때 우리는 덜 해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내고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들을 고민해보게 될 것”(<폐기의 공간사>)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쓰레기는 지저분한 것, 쓰레기 관련 시설도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하고 누구도 거기에 코스트(비용)를 태울(들일) 필요 없이, 태우든 묻든 최대한 저렴하게 처리해 끝내버리려고 한다”며 “(폐기물 시설이) 지하화하는 추세인데, 지하 공간 위로 공원이나 여가 장소가 조성되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더 열악해진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입장도 한번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사는 곳 아래에 묻혀 있는 하수 처리시설을 통해 액체 쓰레기가 흐르는 것처럼, 각 가정에서 나온 폐기물이 흐르듯이 재활용과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상상했다. 대단지 아파트나 마을에 아이엠팩토리 같은 시설을 처음부터 설치해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들어진 플레이크를 원재료 삼아 3D 프린터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순환경제’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의 무덤인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닌, 물질이 재탄생하는 재활용을 위한 공간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책에 “쓰레기를 자꾸만 터부시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감추기에 급급하다면,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결국 겉만 번드르르한 채 곪아갈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메시지를 던지는 폐기의 공간들은 도시를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