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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버리면서 발전소 짓는 나라

입력 2026.02.24 20:09

최근 코스피가 5800을 돌파했다. 그러나 내수는 여전히 차갑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이끄는 상승장에서 소외된 투자자들에게 이번 호황은 남의 이야기다. 우리 산업 1, 2위인 이들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도 지속될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전력시장이다. 전력산업은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거대 기간산업이지만,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효율의 극치다.

시장 효율성의 근본은 가격이다. 물건이 귀하면 가격이 오르고, 흔하면 떨어진다. 이 상식적인 경제 원리가 유독 한국 전력시장에서만 예외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전력 수요 확대 논쟁도 거세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나라는 365일 중 364일은 전기가 남아도는 것이 문제다.

한여름이나 한겨울 단 10여시간의 피크를 막기 위해 수조원짜리 원전을 짓는다. 봄과 가을 평상시에는 30GW(기가와트)가 남는다. 원자력 발전소 약 30기에 달하는 설비용량이 1년 중 수십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자본주의 효율성의 시대에 364일 동안 악성 재고를 생산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산업이 또 있을까? 아니, 전기는 저장이 되지 않으니 악성 재고조차 아니다. 평상시 이 30GW 규모의 발전기들은 거의 대부분 가동을 멈춘 채 대기한다.

하지만 비용은 든다. ‘언제든 돌 수 있게 준비해줘서 고맙다’며 용량요금(CP)이라는 유지비를 지급하고, 그 비용은 전기요금 원가에 반영된다.

더 큰 문제는 ‘출력제어’다. 봄철 낮 시간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발전을 중단시킨다. 제주에서 시작된 출력제어는 호남과 경남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6년에는 연간 1000GWh(기가와트시)가 출력제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4인 가구 약 30만가구가 1년간 사용할 전력량이다.

보조금으로 설치한 태양광 전기를 버리면서도 추가로 발전소를 짓고, 송전망을 건설한다. 이 낭비를 끊고자 2024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됐다. 핵심은 시간과 지역에 따른 가격 차이를 요금에 반영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유동가격제)이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요금체계는 여전히 경직적이다. 전기가 남는 지역은 싸게, 끌어다 쓰는 수도권은 비싸게 받는 것이 시장 논리지만 서울의 자급률이 7%대임에도 요금은 같다. 가격 신호가 없으니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계속 수도권으로 몰리고, 정부는 다시 송전탑을 세운다.

공간 왜곡보다 심각한 것은 시간 왜곡이다. 법은 ‘실시간 시장’을 말하지만 소비자는 체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기가 모자란 폭염 때 누진요금을 완화하기도 한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면 수요는 이동한다. 즉, 쌀 때 쓰고 비쌀 때 덜 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경제성이 살아난다. 최근 전기차 보급이 늘고 있다. 이는 각 가정에 이동식 ESS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공간도 이동한다.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은 전기가 싼 곳으로 이동한다. 보조금 없이도 균형발전에 접근할 수 있다.

특히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도 작동한다. VPP는 분산된 전기차·ESS·태양광을 하나로 묶어 가격에 따라 자동으로 전력을 사고파는 ‘보이지 않는 발전소’다. AI는 전기가 싼 낮 시간에 에너지를 자동 저장하거나 소비하고, 비쌀 때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운영할 법적 기반과 기술을 이미 갖췄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답게 AI 수급 예측, 실시간 제어기술, 스마트 계량기 보급 등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데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없어 VPP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물론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한 에너지 빈곤층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 바우처나 기본 전력 보장제와 같은 에너지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에너지를 장악한 국가가 시대를 주도해왔다. 석탄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떠받쳤고, 석유 패권을 쥔 미국이 20세기를 이끌었다. 21세기의 에너지는 전력이고, 그 위에서 돌아가는 것은 데이터와 AI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효율뿐이다. 가격이 작동해야 수요와 공급이 움직인다. 그래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필요하다. 기술도 있고 법도 있다. 부족한 것은 결단과 용기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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