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중구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정효진 기자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은 차주의 상환 책임을 담보 주택에 한정하는 ‘유한책임대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보금자리론 등 정책모기지에 도입된 유한책임형 주담대 상품을 은행 등 민간 금융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주택시장 하락 국면에서 차주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위험을 은행이 대신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하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과도한 채무 부담으로부터 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유한책임대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한책임대출 확대는 차주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유한책임대출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더라도, 담보물인 주택만 넘기면 잔여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품이다. 국내에선 2015년 디딤돌대출에 처음 유한책임대출이 도입된 이후 2018년 보금자리론 등 정책상품 중심으로 확대됐다.
이를테면 A씨는 은행에서 4억2000만원의 주담대를 받아 6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한 차주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면서 집값이 4억원까지 떨어졌다. 대출을 연체하기 시작한 A씨의 집은 결국 경매에 넘어가 4억원에 팔렸다.
만약 A씨가 유한책임대출을 이용한 차주라면 은행이 4억원의 담보가액을 회수하는 것으로 채무 계약은 종료된다. 나머지 2000만원은 돈을 빌려준 은행이 부담한다. 반대로 무한책임대출이라면 A씨는 은행으로부터 남은 2000만원의 상환도 요구받게 된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유한책임대출의 가장 큰 장점은 ‘채무자 보호’에 있다. 담보물(주택) 가치 내로 상환 책임이 한정되기 때문에 집값이 내려가도 과도한 부담은 피할 수 있다. 은행이 주택시장 변동에 따른 위험을 차주와 분담하는 구조라서 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담보가치 산정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국토연구원은 2024년 ‘주택시장 변동성 확대의 사회적 비용에 관한 연구’에서 “주담대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되는 무한책임대출 방식은 차입자의 상환 부담을 과도하게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현행 구조에서는 주택가격 하락기에 대출자의 파산 위험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어 개인의 재정 파탄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로도 연결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한책임대출 도입은 금융기관과 차입자 간의 위험 분담을 가능하게 한다”며 “차입자가 상환 불능에 빠졌을 때 담보물 처분으로 채무가 종료되도록 설계해 금융 시스템 안정성과 차입자의 재정 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며 제도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은행이 기존보다 위험이 큰 유한책임대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은행이 유한책임형 주담대를 출시한다 해도 소비자가 큰 관심을 보일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유한책임대출을 하게 되면 금리에 ‘리스크(위험)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어 기존 상품보다 금리가 높아질 것”이라며 “소비자가 담보인정비율(LTV) 이상으로 집값이 급락할 것을 걱정해 금리가 더 높은 유한책임대출을 선택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유한책임대출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은행이 대출을 더 신중하게 취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 대출이 줄어들면서 소비자가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며 “기대하는 정책 효과와 달리 금융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은행들과 협의를 거쳐 금융사 자체 유한책임대출 상품 출시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들도 주택 가격 등 대출 요건을 보금자리론과 같은 정책 상품 수준으로 설계해 유한책임대출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향후 유한책임대출 도입과 확대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2019년 은행 등이 유한책임대출을 확대하는 만큼 주택신용보증기금 출연요율을 감면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유한책임대출 활성화를 추진했으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한책임대출 확대에 대한 당위성이나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상품을 설계할지는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은행권의 부담을 고려한 상품 금리 수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