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민단체에 가입해 있다. 상근직이나 임원은 아니지만 보통 소식지로 동향을 파악하고 관심 있는 행사가 있으면 참여한다. 월말에 회비가 차례로 빠져나갈 때 소속감을 느낀다.
2월은 총회가 많은 달이다. 지난해 활동을 점검하고 예산안을 심사한다. 2월에 주로 하는 이유는 전년도 회계를 마치고 새해 계획을 발표하기 알맞은 시점이라 그런 것 같다. 시민단체에 총회는 설 명절 같다.
회원들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총회에서 단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무릇 행사란 늘 모객이 걱정이지만, 총회야말로 의결정족수가 있으므로 메일과 메시지에서 전화까지 여러 통로로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단체의 분위기는 총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와서 활발하게 소통하는지에서 보인다.
2년마다 돌아오는 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한 단체의 총회에 다녀왔다. 이번 선거에는 두 후보가 출마해서 경선이 되었는데 나는 2번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다.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유세한 것은 아니고, 선거송을 녹음해서 단체방에 공유하고 공약을 만드는 데 거드는 식이었다.
모처럼의 경선이라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복합적인 사회 위기에 대응하는 담론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다듬고 만약 당선된다면 단체를 운영할 역량이 충분한지 의구심도 공유했다. 대통령 선거를 볼 때면 군소 후보는 왜 출마하나 싶었는데 선거캠프를 해보니 뒤로 갈수록 진지해졌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가 이곳을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을 텐데.
1번 후보가 조직에서 중진에 든다면 2번 후보는 청년파의 기수였다. 이 단체에서 청년은 수가 적고 현 대표를 비롯한 운영위원회는 중진들로 구성된 상황이다. 2번 후보는 승산이 높지 않았다. 그는 선거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취지에서도 출마했다고 밝혔다. 최근 시민단체의 장이란 책임이 무거워서 단독 출마인 경우가 많다.
지난 선거에 단독 출마한 대표는 노력 끝에 재정건전성을 달성했다고 보고했다. 다양한 사업을 펼치지 못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세 시간에 걸친 안건 심의에서 반대 의견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팽팽해졌다. 사업 추진과 조직 살림 사이 균형잡기 어려움이 분명했고, 사회적 지위와 세대에 따른 입장차도 선명했다. 토론이 끝나자 얄궂게도 반대파 숙청이 없다는 데 안도하는 마음이 들면서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학술지 ‘정치이론’의 편집장이었던 미국의 작가 벤저민 바버는 “강한 민주적 시민사회에서 맺어지는 사회관계는 경제적 상호작용이나 시장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상이 크고 굳건하다”고 말했다. 붕 뜬 개인들의 자유주의도, 너무 끈끈한 공동체주의도 아닌 ‘강한 민주주의’의 자리가 바로 시민사회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 이 시민사회라는 게 허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시민단체는 개인적인 성취를 이룰 플랫폼이나 현실정치로 뛰어들기 위한 발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단체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의 정답고 낯선 얼굴이 나를 구속한다.
2번 후보는 낙선했다. 패배는 얼얼했지만 새해에는 활동에 더 뛰어들기로 했다. 사회 위기에 대응하는 담론 만들기란 대표만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아닌 것이다. 시민단체는 역시 민주주의의 꽃이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