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한 어르신이 홀로 식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천 중구에 사는 박모(52)씨는 혼자였다. 수도·전기 요금은 밀려 있었고, 알코올 문제는 심각했다. 주거 환경도 취약했지만 복지 안전망은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초, 지자체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를 찾아낸 것은 사람이 아닌 체납과 질환 기록 등 27개의 데이터로 박씨의 고립을 감지한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이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 발굴하고 상담, 위험군 판정, 사례관리 등 지자체 공무원이 관리해야 할 업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을 오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다고 26일 밝혔다.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거나 주변 신고·제보가 닿지 않는 사람들을 데이터로 포착해, 지자체가 현장 확인과 지원에 들어갈 수 있게 연계하는 것이 목표다.
보건복지부 제공
핵심은 ‘발굴’ 방식 전환이다. 그동안 고독사 위험자를 찾아내는 일은 각 지자체 담당자 역량과 발품에 크게 의존해왔다. 이로 인해 지자체마다 발굴률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14개 기관이 보유한 27종의 위기 정보 빅데이터가 ‘발품’을 대신한다. 단전·단수, 가스·통신비 체납 같은 경제적 위기 신호는 물론 자살 고위험군 정보, 알코올 등 정신질환 여부, 1인 가구의 전력 사용량 변화(생활방식 감지)까지 고독사와 직결되는 핵심 정보를 총망라했다.
정부는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이 연간 약 18만명의 위험자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발굴된 명단은 기존 복지 사각지대 조사 시기에 맞춰 연 4회 각 지자체로 배분된다. 지자체 담당자는 전달받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장 조사를 벌여 실제 고독사 위험도를 판정하고 즉각적인 개입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지난 1월 20일부터 한 달여간 시범 운영을 거친 결과, 이미 올해 1차로 3만47명을 발굴해 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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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대상과 방식도 대폭 확대·개편된다. 지금까지는 이미 고립이 심화된 ‘고독사 위험자’를 중심으로 단순 안부 확인 위주의 지원이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대상을 ‘고독·고립 위험자’로 넓히고 연령대별 고립 원인과 특성에 맞춘 ‘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청년 고독·고립 위험군에는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위험을 조기에 탐지해 상담·치료로 연결하는 ‘마음회복’ 서비스와 주거·식생활 지원부터 취업 준비, 멘토링까지 아우르는 ‘일상회복’ 서비스가 제공된다. 고독사 비중이 높은 중장년층에는 퇴직·실직으로 끊어진 사회관계망을 다시 잇기 위한 소셜 다이닝·자조모임 등 관계 형성 프로그램과 알코올 중독 관리, 채무·법률 상담을 통한 경제 자립 지원이 함께 이뤄진다. 박씨가 건강관리와 채무 상담을 연계받아 사회 복귀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서다. 노인층은 병원 동행·식사배달 등 돌봄 서비스와 함께, 인공지능(AI) 안부전화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위기 발생 시 24시간 신속 대응이 이뤄지도록 한다.
정부는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 도입으로 일선 공무원의 행정 부담이 경감되고, 지자체별 고독사 발굴률 차이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위험군 발굴부터 서비스 제공, 사후 결과까지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는 만큼, 고독사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이 고독사 위험자의 조기 발굴률을 높이고 필요한 지원을 연계함으로써 실질적인 고독사 위험 감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 등을 거쳐 시스템 적용 범위를 사회적 고립 위험군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