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형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예방약 ‘레나카파비르’ 바이알(병). AP연합뉴스
미국이 잠비아에 보건 원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광업 협력과 국가 보건의료 데이터 공유 등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가디언이 입수한 양국 간 양해각서 초안에 따르면 미국은 5년간 10억1200만달러(약 1조4400억원)의 보건 자금을 조건부로 제공한다. 대신 잠비아 정부는 미국 기업의 자국 광산 접근권을 확대하고, 미국의 상업 투자 확대를 목표로 매달 현지 미국대사관에 무역·투자 촉진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민감한 국가정보인 보건의료 데이터 공유도 주요 조건으로 확인됐다. 초안에 따르면 잠비아는 자국 보건의료 데이터를 미국과 10년간 공유하고, 신종 병원체 관련 정보를 25년간 공유해야 한다. 앞서 케냐의 경우 미국 정부에 자국 보건데이터를 공유하는 기간을 7년으로 합의했다. 잠비아의 조건이 케냐보다 더 불리한 셈이다.
미국은 또 잠비아 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 인원 확대와 모성 사망률 감소 등 성과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 미달 시 협정을 종료하고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고 했다.
보건 자금 지원 규모는 줄었다. 지난해 미국은 잠비아의 HIV 퇴치에만 3억6700만달러(5236억원)를 지원하기로 했으나, 이번 초안에서 확인된 전체 보건 지원액은 3억2000만달러(약 4566억원)에 그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잠비아 시민사회단체는 미국 정부가 “생명을 구하는 보건 원조를 광물·데이터와 맞바꾸려 한다”고 반발했다. HIV 관련 단체 헬스 갭의 아시아 러셀 대표는 이번 협정을 “부도덕하고 뻔뻔한 착취 행위”라며 “탐욕스러운 정부가 보건 프로그램을 협상 카드로 삼을 때 모든 사람이 고통받게 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해외 원조 담당 기구인 국제개발처를 폐지한 뒤 잠비아 보건 체계는 지원 공백을 겪어 왔다. 미국은 잠비아의 주요 HIV 요법인 ‘노출 전 예방요법’의 약 49%를 지원해왔다. 원조 중단 이후 HIV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하던 드롭인 센터 32곳이 문을 닫았다고 유엔 에이즈합동계획은 밝혔다.
최근 미국은 원조 단체를 거치지 않고 아프리카 정부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양자 보건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짐바브웨는 민감한 정보인 국가 보건의료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 대한 우려로 미국과의 보건 협정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