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미친 전쟁에 맞선 한마디
파울라 카르보넬 글·이시드로 페레르 그림
정재원 옮김 | 책과콩나무 | 48쪽 | 1만4000원
덩그러니, 한 소녀가 앉아 있다. 아니 남겨졌다. 그 옆에는 소녀를 삼키고도 남을 만한 커다란 구멍이 검은 기운을 날름거린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집을 찾을 수 없었어요.” 여긴 공원이다. 구멍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쥐구멍만큼 작았다. 남매를 찾아낸 엄마는 숨바꼭질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 아빠를 찾아야 한다고도.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오빠가 병이 났어요, 하지만 우린 병원에 갈 수 없었지요.” 벤치에 누운 오빠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아래 구멍도 맨홀만큼 커져 있다.
“아빠가 우리를 찾아냈어요.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어요.” 남매는 기차를 타지 못했다. 남을 수도 떠날 수도 없게 만드는 게 바로 전쟁이다. 다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그 누구도 재밌지 않은.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팠어요. 오빠는 깊은 잠이 들었어요.” 그새 더 크고 깊게 파인 구멍은 힘없이 늘어진 오빠의 다리부터 삼킨다. 소녀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눈 코 입을 그려넣지 않은 건, 이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덩그러니. 소녀를 따라다니는 검은 구멍은 총이자, 폭탄이자, 탱크다. 소녀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일까. 살아남은 것일까.
“아빠가 욕을 내뱉었어요. 오늘만큼은 욕을 해도 된다고 했어요.” 뒷장엔 아무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다. 백지 위에 아주 작게 읊조리듯 여섯 글자가 쓰여 있다.
빌어먹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