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돌
이라영 지음
동녘 | 640쪽 | 3만3000원
1979년 4월부터 1988년 1월31일까지 이라영 작가의 가족들이 살았던 양양의 집. 2023년 7월 작가는자신의 서류상 출생지이자 아버지와 고모, 할머니가 한 시절 살았던 양양으로 향한다. 자신이 살았던 집은 사람의 손길이 멈춘 지 오래된 폐가로 변해있었다.
광업소 노조위원장이었던 아버지 중심으로 엮어낸 3대 노동이동사
선광공·경리 등으로 일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광산의 여성들’도 다뤄
산업 변화 속 소멸하는 직업서 견디고 이 세계 떠받치는 이들의 삶
“고모가 돌아가셨다. 2021년 1월19일이었다. 아버지가 곧 강릉에서 출발할 예정이라 했다.” 저자는 생전 ‘이상한 사람’이었던 고모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다 자신의 출생지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장승리로 기록된 사실을 발견했다. 장승리는 자신의 출생지가 아닌 아버지 직장 ‘양양광업소’가 있었던 동네다. 문득 그때 그 ‘광산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져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는 “이제 다 죽었지”라고 했다. “그나마 알던 사람들도 이젠 다들 죽었어. 이상하게 일찍들 죽었어.”
<쇳돌>은 광산노동자의 가족인 저자가 자신 가족의 삶에서 출발해 광산, 폐광, 그리고 폐광 이후를 기록한 이야기다. 산업의 전환과 자본의 이동에 따라 수많은 노동과 노동자의 삶은 지워지고 망각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젠 다 죽었어”라는 말을 듣고 더 늦기 전에 그들의 노동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희미한 목격자였던 저자는 구체적인 기록자가 되어 광산에 깃들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쇳돌’처럼 캐고 골라내 책에 담았다.
작가가 아버지의 동료들이 선물한 하얀 반코트를 입고 동생과 함께 서울의 어느 여관 앞에 서 있는 사진. 동녘 제공
예술사회학자 이라영 작가(1976년생)는 양양에서 태어나 열두 살까지 살다 강릉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이후 서울·부천을 전전했다. 이러한 이동의 궤적은 국내 유일의 자철광인 양양광업소에서 일했고, 그곳의 첫 민주노조 위원장이자 1995년 광업소가 폐광할 때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던 아버지 이선권(1947년생)의 노동과도 닿아 있다. 저자는 연구자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내는 자문화기술지의 방법으로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았던 광산의 목소리와 삶, 노동, 투쟁을 채굴한다. 각종 언론과 향토 연구 자료, 논문 등 공식적으로 검증된 자료에 관련 인물의 구술과 문학 작품을 엮어내 조모·부모·저자에 이르기까지 3대의 노동이동사, 더 나아가 한 시대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복원해내는 책이다.
양양은 오늘날 서핑 성지로 유명하지만 1930년대부터 철광석을 캐내 일본으로 수출한 광산의 고장이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 속했던 경계의 공간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결혼한 할머니는 해방 후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다가 생계와 생존을 위해 1960년 광산이 있는 양양까지 흘러들어온다. 한국전쟁통에 남로당 활동을 했던 할아버지가 ‘행불’이 된 탓에 아버지와 고모는 나라의 감시를 받으며 긴 시간 연좌제의 피해자로 살아야 했다. 결국 아버지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광산에 “주저앉았다”. 그 좌절은 노동조합으로 향했다. 분노를 자원으로 삼아 ‘시민되기의 방법’으로서 싸움에 나선다. 이렇게 역사·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삶이 맞물리는 가족의 이야기는 노동자의 삶을 비가시화하며 구체적 일상과 연결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 세계를 떠받치는 것이 “변화하는 산업 지형과 소멸하는 직업 속에서 견디고 이동하는” 이들의 노동이라는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
“‘광부의 밥상’은 대표적으로 열악한 노동자의 밥상으로 호명되며 미디어에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 폐광촌에서 옛 광부들의 희생과 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들게 번 돈을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은 남은 돈으로 값싼 고기와 소주로 배를 채웠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만날 수 있는데, 다분히 가부장적 시선이다. 노동자들의 궁한 식사에 시선을 두다가도 여지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성들보다 더 먹을 기회가 없는 여성들의 위치이다.”
책에서 빛나는 대목은 광산에 함께 존재했음에도 묻혀 있던 여성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서술이다. 여성들 역시 광석을 골라내는 선광공으로 고된 노동을 했고, 작가의 어머니처럼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인형 옷·구멍가게·뜨개질 등 다양한 부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부정 정황이 담긴 회계 자료를 넘겨준 여성 경리 R이었다. 그럼에도 “전성기의 광산은 남성 노동자를 내조하고 가정을 돌보며 생활을 책임지는 아내인 여성의 노동과 남성 노동자를 유흥으로 위로하는 여성의 노동이 공존하는 장소였다”면서 남성중심적 서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의 광산 다시쓰기는 노동자들의 몸과 생명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로도 확장된다. 광산 사고에서 생환한 노동자를 ‘인간 승리’로 칭송할 때 감춰지는 광산 회사의 부실한 안전 관리와 국가의 책임과 같은 문제들이다. “어차피 없어질 직업”으로 “산업폐기물”이 되어버린 노동을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은 ‘막장’이라는 단어에 머문다. “노동의 장소가 윤리적 비난의 장소”가 된 비하의 언어다. “내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 싫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싶지 않으나 반드시 필요한 노동일 경우 이 노동의 세계를 모르려고 한다. … 현대사회에서 배터리 없는 일상은 거의 불가능함에도 광산노동자의 삶에는 무관심하다. 그 무관심 속에서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사라진다기보다 인식 속에서 사라진다.”
‘고향’으로 돌아가 경계를 포착하는 저자의 글쓰기는 아니 에르노나 디디에 에리봉의 책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다만 저자는 이들이 고향을 ‘방문’했을 뿐이거나, 그 ‘되돌아가기’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였다는 점을 짚는다.
여전히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노동계층에 이러한 자기기술지가 어떻게 읽힐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실제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기록한다.
고모의 죽음에서 출발해 소멸하는 세계를 돌아보는 이 글은 애도의 글쓰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업은 사라지는 세계가 아니다. 점점 보이지 않는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익명 속에서 그렇게 계속 쓰여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