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사람들
이유리 지음
문학동네 | 352쪽 | 1만8000원
소설가 이유리의 첫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의 무대는 정체불명의 오염물질로 이루어진 분홍빛 구름으로, 이곳에는 절대적 빈곤 상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구름 사람들이 산다. 이들의 가난은 현실 사회 어디에선가 마주하는 고통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학동네 제공
오염물질로 이뤄진 분홍빛 구름 속
절대 빈곤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
“불행으로 만들어진 솜사탕” 같은 삶
가상세계 통해 그려낸 현실적 가난
지상에서 1.5㎞ 떨어진 상공에 정체불명의 오염물질로 이루어진 분홍빛 구름이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산다. 지상에 제 몸 하나 누일 곳 찾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소설의 주인공 ‘오하늘’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구름의 오염물질 때문에 폐가 굳어가는 병을 앓는 노쇠한 할아버지와 산다. 구름과 땅을 이어주는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고깃집으로 아르바이트를 가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남짓이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구름 위에 지어진 집들은 판자촌보다 못하다. 지붕은 없고 어디서 날라온 몇개의 벽돌로 가벽을 만든 수준이다. 이들의 집엔 냉장고도 없어 신선한 식품을 먹기도 어렵다. 아이들은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모두 돈을 벌러 나간다. 지상보다 태양과 가깝다 보니 구름 사람들 얼굴은 까맣게 탔다. 그래서 까만 얼굴은 지상과 다른 구름 사람들을 구별해 내는 표식이 된다. 소설 속에서 이들이 사는 구름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지들의 핑크빛 요새”다.
오하늘의 가족은 태생이 폭력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주어진 상황 때문에 폭력적이 된다. 아버지는 본인이 구제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무마하려고 딸인 오하늘을 때린다. 오하늘은 아직 어리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밥만 축낼 뿐인 동생을 때린다. 평생 남의 집 일을 해온 어머니는 이미 너무 지쳐서, 이런 모든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본다.
가히 절대적 빈곤 상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 같은 소설 속 구름 사람들의 설정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이 가난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오하늘의 모습을 비현실적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 사회의 어디에선가 마주하는 세계의 고통에 눈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극단적 빈곤과는 거리가 먼 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오하늘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소설이 독자로 하여금 이 지독한 가난을 그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처럼 소비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랄 뿐이다.
소설 속에서 구름 사람들의 위기는 가난을 넘어 삶의 터전이 철거될 상황에서 더 증폭된다. 땅 사람 일부는 정부에 하늘 위 오염물질을 없애라 요구하고 정부는 인공 강우제를 살포해 구름을 철거할 계획을 세운다. 오하늘과 하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사람이 정부를 향해 주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싸운다. 그들의 싸움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 주목받지 못한다. 지독한 빈곤 속에서 돌봄받지 못한 아이들은 혼자 남는다. 오하늘의 동생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오하늘의 동생이 다다르는 비극과 이 비극 앞에서 살기 위해 또 한 번의 선택을 강요받는 오하늘의 이야기는, 오하늘이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했던 “죽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나쁜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구름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어쩌면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초반, 유명한 영화감독이 구름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로 해외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소설 속 영화감독은 트로피를 손에 쥐고 이렇게 말했다. “저 아름다운 분홍빛 구름을 보세요. 마치… 불행으로 만들어진 솜사탕 같지 않습니까.” 소설가 이유리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오하늘을 이렇게 만들어 내놓는 바람에 이 우주 어딘가에 한 사람어치의 새로운 불행이 존재하게 됐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나.”
많은 예술작품이 현실의 모습을 기반으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가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매혹적이기도 하고 때론 더 잔혹하기도 하다. 문학이 혹은 영화가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서는 지옥도 천국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가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느냐, 이를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이유리가 첫 장편으로 펴낸 이 소설이야말로 작가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소설의 발문을 쓴 강보원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해 “‘말이 되지 않음’에 바쳐진 소설로 보인다”며, 말이 되지 않음이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어느 편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냥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감정과 함께, 그러한 감정 위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