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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퇴직연금 개혁을 요구하자

입력 2026.02.26 20:11

수정 2026.02.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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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제대로 된 퇴직연금 개혁을 요구하자

복지 전공학자 몇몇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다양한 정부 복지 정책에 점수 매기기 놀이(!)를 했었다. 최하위는 연금이었다. 내 점수가 특히 야박하기는 했지만, 연금이 꼴찌라는 데는 모두가 수긍했다. 우리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국민 전체 대비 노인의 평균 소득은 가장 낮다. 연금은 나이 들어 일하지 못해서 수입 없을 때의 대비책이다. 연금이 제 역할을 한다면, 근로 시절 착실히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노후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과 교사를 제외하면, 연금만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노후 생활이 보장되는 사람은 없다. 다른 복지제도들도 미흡한 점이 여럿이지만, 연금처럼 자기의 존재 의의를 부정당하는 제도는 없다.

우리의 연금제도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의 3층 체계이다. 기초와 국민연금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제일 심각한 것, 그래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뜯어고쳐야 할 것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이름이 무색하게 연금 기능을 전혀 못한다는 점이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수급자는 매달 일정액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 이게 ‘연금(年金)’의 정의다. 그러나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는 사람은 없다. 수급자의 90%는 일시금으로 받는다. 나머지 10%는 10년 분할로 받는다. 10년 분할이 일시금보다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이다. 퇴직 후에도 월급처럼 매달 수입을 얻게 하자는 것이 퇴직연금의 목적이다. 이를 전혀 이루지 못하는데도 퇴직연금이라는 명칭을 버젓이 고수하는 정책당국의 대범함이 놀랍다.

퇴직연금 수익률 형편없이 낮아

연금으로 받지 않는 이유는 선택 시 수급액이 적기 때문이다. 퇴직 때까지 적립 금액이 적어서 연금을 택해봤자 액수가 너무 적은 탓에 일시금으로 받는다. 적립금 많은 사람도 이를 연금 형태로 받는 것보다 적립금 찾아서 자신이 굴리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적립금이 제법 되는데 일시금으로 받으면 세금을 많이 내는 탓에 10년 분할로 찾을 뿐이다.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공무원연금과 비교하면 분명하다. 공무원연금 수급자도 연금과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다. 다수는 연금을 선택해 일시금 선택 비율은 5% 남짓이다. 퇴직연금과 정반대로 연금으로 받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목돈이 필요한 소수만 어쩔 수 없이 일시금을 택한다.

정부가 매년 막대한 금액을 보전해주는 공무원연금과 보험료 및 운용수익만으로 굴러가는 퇴직연금은 처지가 다르다. 우리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해외 퇴직연금만큼 된다면 연금 수급액은 현행보다 월등히 커서 일시금보다 훨씬 이득을 본다.

내가 퇴직연금에 대해 가장 분개하는 게 이 대목이다. 수익률이 형편없다는 것, 그런데 이게 개인의 운용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순전히 정부가 제도를 잘못 설계한 탓이라는 점이다. 우리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2%가 조금 넘는 데 비해,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해외 퇴직연금은 7% 정도이다. 해외 가입자들이 죄다 투자의 달인이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가입자가 운용한다. 해외는 국민연금처럼 기금을 조성해 전문가가 운용한다. 그래서 이토록 차이가 큰 것이다.

수익률 7%와 2%가 노후 소득을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따져보자. 입사 시점 월 급여는 300만원이고 매년 3%씩 상승한다고 하자. 30년 재직하면서 퇴직연금 보험료를 냈다면, 퇴직 시 적립금은 얼마가 될까? 수익률 7%면 4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2% 수익률에서는 2억원에도 못 미친다. 두 배가 넘는 차이다. 이번에는 적립금을 향후 25년간 연금으로 받는다면 매달 얼마를 받을지 계산해보자. 물가상승률은 2%로 가정한다. 수익률이 7%면 현재 가치로 240만원을 받는다. 물론 물가상승률만큼 급여도 상승한다. 이에 비해 수익률 2%에서는 60만원 정도만 받는다.

240만원과 60만원. 엄청난 차이다. 실제는 운영비 등을 제외해야 하니 수익률이 7%라고 해도 240만원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상당한 액수다. 30년 재직하면 국민연금도 150만원 정도는 받을 테니, 둘을 합치면 350만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품위 있는 노후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퇴직연금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민간기업 퇴직자들이 교사나 공무원 은퇴 친구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기금 조성해 전문가가 운용해야

정말 기막힌 것은 퇴직연금 급여액을 높이는 데 추가로 드는 돈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퇴직연금 운용을 가입자에게 떠넘기는 대신 기금을 조성해서 전문가가 운용하게 하면 된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강제 가입이다. 그런데 왜 국민연금은 기금으로 운용하면서 퇴직연금만 개인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가. 퇴직연금을 강제 가입하게 하면서 가입자에게 전적으로 운용을 떠넘기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찾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최근 3년 수익률은 15%가 넘는다. 물론 최근 3년은 예외적으로 운용 실적이 좋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이래 지금까지의 평균 수익률도 7%에 달한다. 퇴직연금이 기금으로 운용되어 국민연금 정도의 수익률만 내도 앞서 제시했듯 매달 200만원 이상의 퇴직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이달 초 노사정은 기금형 도입에 합의했다. 너무나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도입에 합의했으니, 이제 구체적 내용을 설계해야 한다. 어떤 내용으로 채우든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담아야 한다. 기금형 시행 목적은 수익률 ‘대폭’ 제고라는 점이다. 이를 확보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어떤 형태의 기금을 만들든, 목표 수익률은 국민연금 수익률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민간 금융회사들이 운용하는데, 어찌 공공이 운용하는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떨어지겠는가. 이게 어렵다면 그냥 국민연금공단에 맡기면 된다.

퇴직연금을 도입하면서 기금형을 제외한 탓에 많은 국민이 노후 소득에 엄청난 손실을 봤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재작년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려 하자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우리도 제대로 된 퇴직연금 개혁을 요구하고, 그게 안 되면 격렬하게 항의하자.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는 법이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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