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촉발된 의·정 갈등이 2년 만인 최근에야 온전히 마무리됐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병원에 복귀한 지난해 의·정 갈등이 마무리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진짜 매듭은 지난달 2027~2031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확정하고, 증원분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24년 정부가 연간 2000명씩 의대생을 더 뽑겠다고 발표한 이후 겪었던 극심한 갈등과 피해를 생각하면, 뜻밖에 조용하고 원만한 마무리였다.
정부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490명 더 뽑는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증원 규모를 늘려 5년간 총 3342명의 의대 신입생을 더 선발한다. 증원분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의대에서 지역의사전형으로 뽑는다.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은 졸업 후 대학 소재 권역 내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지역에서 수련하고, 정주하며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질 의사를 배출하는 지역의사제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의료계도 시민단체도 정부가 확정한 숫자에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증원의 필요성, 교육 현장의 수용성, 증원분의 배분 내용 등을 감안하면 정부로서는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해도 명분과 절차를 갖춘 정책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증원 결정이 합의에 의해 이뤄진 점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한국에서 의사 수를 늘리려는 시도는 그동안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뚜렷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의약분업을 도입했던 2000년 의대 정원을 351명 감축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연간 400명씩 10년간 4000명 증원을 발표했으나,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하던 시기 의료계가 파업에 나서면서 결국 정부가 뜻을 접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숫자를 대폭 늘려 연간 2000명씩 5년간 1만명의 의대생을 더 뽑겠다고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폭 증원이었다. 곧바로 전공의 집단 사직, 의대생 동맹 휴학이 이어졌고 그로 인한 의료 공백은 1년 이상 지속됐다. 환자들의 피해가 장기화하는 중에도 정부와 의료계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정부가 의료계를 상대로 의사 수 증원을 관철하기란 좀처럼 가능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게 됐다. 번번이 증원에 대한 반대, 숫자를 둘러싼 힘겨루기였고, 절차적 논의에 이르지 못했다.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을 1500명가량 늘린 뒤, 정부는 일단 증원 이전 수준의 정원으로 회귀했다. 일종의 휴전이었다. 이후 지난해 의사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통해 필요한 미래 의사 수를 도출하고, 지난달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논의를 통해 최종적인 의대생 증원 규모, 증원분의 지역의사제 선발 등을 합의로 결정했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공식 논의 기구에서 합의를 통해 의대 증원을 결정한 셈이다.
그간 수차례 있었던 의·정 갈등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지만 결국 이번 합의에 이르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부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절차와 논의를 거쳐야 하는지도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 의사를 많이 늘리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제보다는, 지역의사제라는 제도를 통해 법적·제도적으로 지역의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그렇다. 또 정부가 일방적으로 숫자를 정하기보다는 과학적 추계와 각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합의 기구를 통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도 이번에 확인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의대 정원을 늘리고자 한 본래의 목표를 실현하는 일이다. 지역·필수·공공의료 현장에서 일할 의사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이번 증원은 또 하나의 숫자에 그칠 뿐이다. 또 다른 갈등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내실 있는 이행과 치밀한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
양질의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출발점이다.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수가 체계와 근무 여건, 법적·제도적 보호 장치를 함께 손보지 않으면 지역의사제 역시 명분에 머물 수 있다. 환자들이 가까운 병원을 신뢰하며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증원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동안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정부가 왜 의사 수를 늘리려고 한 것인지, 이제 성과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 시작됐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