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K’가 붙는 한국의 몇몇 자랑거리들은 이제 한국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려온 것들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영상은 넷플릭스 세계 1위,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영국 에든버러역 부근 식당에서는 치킨김치햄버거를 팔고, 스웨덴 스톡홀름 중앙역에서는 볶음김치와 현미를 섞은 샐러드가 인기 메뉴다.
‘K항공’이란 말은 아직 없지만, 한국 항공사 역시 손꼽을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면서도 귀국행을 한국 항공사로 정하는 내겐 이유가 있다. 긴 여정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안전하게 돌아가리라는 기대에서다. 한국의 비행기는 깨끗하고 승무원들은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학자 혹실드가 여승무원의 행동을 관찰한 후 ‘감정노동’이란 개념을 만들어 항공사 성패를 가르는 요인의 하나라는 사실을 밝힐 만큼 승무원들의 노동은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만족하는 것은 승무원들의 미소 때문이 아니다. 미소 속에 감춰진 그들의 눈빛, 자기의 책임을 알고 그것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눈빛 때문이다. 여기에 연륜이 쌓인 30~40대 승무원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신뢰감은 증폭된다. 오랜 시간 단련하고 전문성을 갖춘 그들이 나의 귀국길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다.
여성성 전시하는 ‘모델 같은’ 복장
노동의 질이나 고객 안전과 무관
출퇴근 때도 벗지 못하는 ‘작업복’
대체 누구를 위한 옷차림인 걸까
그럼에도 한국 비행기 안에서 내가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늘 어색하고 불편하다. 승무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승무원들의 차림새 때문이다. 평소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한항공 여승무원의 복장은 더 그렇다. 몸에 꽉 끼는 블라우스와 스커트, 하이힐은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성을 전시하는 ‘모델’처럼 느끼게 한다.
여승무원의 유니폼은 작업복이다. 비행기는 그들의 일터이며, 능숙하게 일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사시에는 고객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드물긴 하지만, 항공사 사고는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낼 수밖에 없어 승무원들에게 주어진 책임도 무겁다.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유니폼은 오히려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일상 행동조차 불편할 것 같은 꼭 끼는 복장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승객의 안전을 살펴야 하는 노동에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질문은 왜 그런 작업복 차림을 거리에서 만나야 하는가이다. 공항 부근 거리나 버스에서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들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대한항공의 경우 유니폼 자체가 워낙 눈에 띄는 스타일이라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알아보니, 대한항공에는 자체 탈의실이나 사물함이 없고 출퇴근 시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이 규칙이라고 한다.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할 때 품위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도 따라붙는다.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한다니? 낯설다.
언론 보도를 보면, 현재의 유니폼을 고수하는 이유는 ‘반응이 좋다’는 데 있다고 한다. 누구의 반응일까? 그것을 입고 일하는 여승무원들의 반응인가? 아니면 여성의 이미지를 팔거나 사고 싶은 이들의 반응인가? 여승무원의 업무가 고객을 직접 대하는 것이라 유니폼도 작업복이자 동시에 이미지 상품이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노동의 질이며 고객의 안전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현재의 유니폼은 구식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여성이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서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차별적이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얼마 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보지 않았나? 최가온과 유승은의 헐렁한 선수복이 그들을 얼마나 강력하고 멋있는 존재로 보이게 했는지를. 이제 대학에서도 여학생들은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통 넓은 바지와 운동화가 패션의 대세다. 중고등학생 교복마저 생활복으로 바꾼단다. 실용성뿐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K항공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시대착오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 어느 항공사보다도 새롭고 진취적인 여승무원의 모습을 보여주시라.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 큰 자율성을 허용하시라. 한국의 여성들은 충분히 그럴 능력과 자격이 있다.
이번 주말은 3·8 여성의날이다.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첫 번째 실천은 일터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다. 여성을 주변적인 존재, 성적 대상으로 가두지 마시라. 최가온과 유승은처럼, 힘이 넘치고 높이 날아오르는 존재로 만드시라. 기업도 함께 날아오를 것이다. K기업의 새로운 비전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