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책, 새로운 시선의 영화, 놓치면 아쉬운 전시, 입주자님과 나누고 싶은 노래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개해온 플랫레터 속 코너 ‘플랫한 문화생활’을 월 1회 엮어, 마지막주 뉴스레터를 발송해드린 다음주 월요일에 보내드립니다.
강선형 외, <여성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써먹을 일이 없는데 왜 해?” 현대인들이 ‘쓸모’를 고려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사고 방식입니다. 일상 속 작은 선택까지 기회 비용을 따지는 건 응당 자본주의 사회에 잘 순응한 결과이겠지요. 이 흐름 속에서 저는 종종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바로 이 비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이 변한 듯하지만, 여자가 철학을 한다는 사실을 어떤 사람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여자가 사유하는 존재라고? 되묻는다. (중략) 이렇게 비실용적인 일은 큰 뜻을 품은 남자들이나 하는 거라는 통념도 있다. 이러한 편견의 세계에서 여자가 사유를 삶을 걸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맞서듯이 혹은 그러지 않듯, 여성은 사유하고 사유할 것이다.”
책 <여성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는 다양한 경로로 철학과 관계 맺는 여성 철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농사를 지을지, 학교를 갈지”를 고민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삶의 몰락”에 대응하다가,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철학과 공명하게 됩니다. 저자들은 각자 두 편의 글을 통해 자신이 철학과 관계를 맺어온 과정과 각자가 탐구해 온 철학자의 사상을 함께 풀어내는데요. 한나 아렌트, 장 폴 사르트르, 질 들뢰즈 등등. 지나가며 어렴풋이 들어본 철학자 이름들이 책 속에 등장합니다. 낯선 철학자의 사상이지만 저자들의 글을 통해 쉽게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도래하고 그것을 위한 개념이 창조되어야 하는 한, 철학은 결코 죽지 않는다.” 철학은 일상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일상 속 매일의 사건을 다시 돌아볼 때 열리는 세계라는 것인데요. “AI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더 많은 여가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 “이야기는 삶을 의미화하고 자신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차별이란 피 흘리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들은 철학이 우리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철학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매끄러운 표면처럼 보이는 일상의 이면을 들추는 일에 가깝습니다.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몰두하는 여성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영감을 선사하는데요. 쓸모를 생각하는 일에 지쳐 있다면 이 책과 함께 환기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정현진, <토끼전 대 호랑전>
설날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명절 음식 냄새와 그 뒤에 겹쳐진 여성들의 노동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전과 음식을 기다리는 일이 즐거웠지만, 자라면서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고된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명절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거나, 가족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기도 합니다.
“바삭한 파전 쪽쪽 찢어 젓가락에 돌돌 말아 짭짭 먹어 보니 파의 소박한 단맛과 우엉의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우아한 풍미를 자아내는구나. 보들보들 촉촉한 육전 후후 불어 오물오물 맛보자 산뜻한 산나물 향이 코끝을 감돌고 진한 육즙과 다채로운 고명이 조화로워 가히 최고로다.”
이런 변화의 감각을 유쾌하게 담아낸 그림책 <토끼전 대 호랑전>의 한 대목입니다. 인간 세계의 전 맛에 반한 토끼와 호랑이는 직접 전을 만들기로 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산에서 전 만들기 최강자를 가리겠다며 다투던 둘은 전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전 대감 댁 ‘업둥이’에게 심사를 맡깁니다. 작은 몸집의 토끼는 거침없이 파전을 부치고 손이 투박한 호랑이는 고명을 얹은 섬세한 육전을 완성합니다. 외형이 만들어낸 기대와는 다른 결과는 ‘누가 무엇을 잘해야 하는가’라는 고정관념을 슬쩍 뒤집습니다.
심사를 보던 업둥이는 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니라 ‘화합’이라고 말합니다. 명절마다 함께 전을 부치자는 제안과 함께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요. 업둥이는 아이가 없는 집 앞에 버려졌다가 거둬진 존재입니다. 그런 인물이 화합을 말한다는 점이 깊이 와닿습니다. 전 대감 댁의 살림을 도맡던 업둥이 그리고 이제는 함께 명절을 보내는 동물들. 모두가 전을 부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존의 가족 중심 질서에는 조금씩 균열이 납니다.
이 그림책은 ‘화합’이라는 이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소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명절의 다른 장면을 상상하게 합니다. 성별과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부엌, 혹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끼리도 둘러앉아 전을 부치는 풍경. 어쩌면 명절은 그렇게 새로 그려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균열이 생긴 가족이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래 전 어머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던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카드)가 배우가 된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에게 자신의 신작 주연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며 시작됩니다. 유명 영화 감독인 동시에 가족에게 상처를 남긴 아버지. 노라에게 그의 제안은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균열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결국 노라는 분노하고 말죠.
무대 공포증이 있는 연극배우 노라는 매번 무대에 오르는 일이 고됩니다. 그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신의 문제(무대 공포증)를 언젠가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불안한 상태를 걱정하는 동생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 릴리오스)는 종종 언니 노라에게 “괜찮냐”고 묻습니다. 노라는 창백한 표정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합니다. 해맑게 웃는 그녀의 표정과 반대로 그녀는 괜찮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동생 아그네스의 노력으로 노라는 자신이 외면했던 아버지의 신작 시나리오를 읽게 됩니다. 노라가 읽게 된 시나리오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할머니의 이야기였는데요. 구스타브는 3세대가 지내온 집에서 벌어진 트라우마의 역사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자신을 위한 영화라던 아버지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닫고 노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합니다. 구스타브가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을 끝으로, 가족의 상처가 예술을 매개로 봉합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 속 ‘노라’는 연약하지만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는 태도는 자칫 아버지와의 갈등을 방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라의 이런 태도는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려왔던 과거에서 기인합니다. 노라는 동생 아그네스에게 같은 유년시절을 보낸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너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이에 아그네스는 “나에게는 챙겨주는 언니가 있었어”라고 말하기도 하죠. 현재 노라가 무너진 것은 과거에 너무 많은 것을 지탱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센티멘탈 밸류>는 예술이라는 매개가 상처를 낼 수도 있지만 구원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러닝타임 2시간 14분 동안 상처와 구원 사이를 오가던 영화는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기에 알 수 있는 무언가. 가족들끼리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바로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정은,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은 우리를 지칭하는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입니다. 존재의 집을 새로운 언어로 다시 지어온 곳이 있는데요. 바로 1953년부터 여성을 중심에 두고 복지 사업을 진행해 온 사회복지법인 ‘윙’입니다. 2006년, 사업을 점검하던 ‘윙’은 사회복지의 언어를 과감히 폐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윙’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사례’나 ‘대상자’라고 부르는 대신 ‘친구들’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지요. 구분의 언어를 넘어 주거권 실험부터 인문학 수업까지 여성들에게 ‘빵과 장미’를 건네기 위해 노력해 온 ‘윙’의 이야기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여성과 집’, ‘여성과 공부’, ‘여성과 일’, ‘여성과 우정’. 책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의 목차입니다. 직관적이고 간결한 이 구성은 ‘윙’이 진행해 온 사업의 기록이자 여성들이 살아가며 필요로 했던 삶의 조건을 담아냅니다. 이 책은 사업의 성공담을 설파하거나 이상적인 복지가 무엇인지 나열하지 않습니다. ‘윙’의 시도는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사업에 참여하던 이가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그들이 ‘오늘’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결핍과 트라우마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윙’의 친구들이 자기 삶과 존엄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장면들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훈련이 아닌 교육이 아닐까. 지금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며 인생의 파도를 용감하게 건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 그러니까 가슴속에 한 송이 장미를 심는 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자(‘윙’의 대표)는 ‘빵’에 비유되는 일자리 훈련과 주거 지원 사업과 더불어 ‘장미’를 함께 챙기고자 했습니다. 종종 고상한 것으로만 여겨지는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쉼터의 친구들이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함께 우리의 삶이 충만해지길 원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배움에 차별을 두지 않는 수업이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한 친구는 인문학 수업 후기에 이렇게 남겼다고 합니다. “철학이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모두 철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윙’의 이야기는 희미해져가는 공동체의 감각을 되살립니다.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여성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책이 입주자님들에게 ‘비빌 언덕’을 상상해볼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김연서 인턴기자 auue56@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