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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의 지조를 지켜온 남명매

입력 2026.03.02 20:05

수정 2026.03.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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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산천재 남명매

산청 산천재 남명매

봄 오는 기미, 또렷해졌다. 밤바람은 아직 싸늘해도 성마른 봄꽃들이 꽃잎을 열었다는 남녘의 기별이 이어진다. 여느 봄꽃에 비해 일찍 피어나는 매화꽃 개화가 이 무렵 가장 반가운 꽃 소식이다. 탐매행을 서둘러야 할 때다. 우리의 오래된 매화에는 대개 나무가 서 있는 장소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선암매’ ‘고불매’ ‘율곡매’와 같은 식으로 나무에 담긴 인문학적 자취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다.

경남 산청 산천재 뜨락에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매실나무 가운데 하나인 ‘남명매’가 있다. 지리산 자락에 은둔하며 남명학파를 이끈 조식(1501~1572)의 호, 남명(南冥)을 붙인 이름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해에 태어나 ‘좌퇴계 우남명’으로 불릴 만큼 영남 유학의 한 축을 이룬 조식의 행로는 이황과 달랐다. 남명은 일생 벼슬을 사양하고 재야에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늙마에 그는 지리산 천왕봉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서재를 짓고 머물렀다.

완성한 서재에 ‘산천재’라 이름 붙인 그는 매실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는 “내 마음이 흐트러지면 나무도 시들 것이고, 정신이 바로 서면 이 매화는 향기로울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고 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삶을 비추는 거울’로 여긴 것이다.

얼마 뒤 매화가 피어나자 그는 시를 지어 매화를 칭송했다. “작은 뜰에 매화가 한창 피었으니(小庭梅發正芬芳)/ 늙은이 마음 또한 향기롭구나(老夫心亦自馨香)/ 꿈속에서도 지리산 구름 아래 노니는데(夢裏遊天嶺雲下)/ 어찌 벼슬길 붉은 먼지를 부러워하랴(何須羨彼紅塵忙)” 세속을 멀리하고 은둔한 선비의 삶과 은은히 풍기는 암향의 매화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의 매실나무가 지금까지 은사의 상징으로 살아남았다. 불굴의 절조를 가지고 은둔의 삶을 실천한 은사, 조식의 삶이 보여준 ‘고요 속 절조’를 담고 살아온 큰 나무다. 먼 훗날까지 우리의 봄을 옛 선비들의 정신과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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