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는 속도가 느린 민주적 절차다. 학습과 토론을 거쳐야 하기에 서두를 수 없다. ‘숙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론화는 단순 여론조사나 설문조사보다 무거운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숙의를 거친 공론화 결과는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다.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론화 당시 ‘탈원전 대 친원전’ 진영의 대립은 지금보다 극심했지만, 참여자의 93.2%는 어떤 결과든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들어 진행된 공론화는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공론화 절차를 거쳐 내놓은 결과임에도, 참여자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당장 공론화를 통해 정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신규 원전 2기 건설 방침을 두고 시민사회와 산업계 모두가 불만을 표하고 있다. 불만이 쌓이면서 공론화 절차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간의 공론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공론화에 보내는 불신의 시선도 이해가 간다. 두 공론화는 모두 짧은 기간 동안 제한된 정보 속에 진행됐다. 2035 NDC 정부안(하한 50~53%, 상한 60%)은 최종 토론회 당일에야 참여자들에게 통보됐다. 신규 원전 2기 건설 여부는 두 차례의 찬반 토론과 여론조사만으로 결론이 났다. 더욱이 정부가 최종 판단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 여론조사마저 편향성 논란에 휩싸여 신뢰를 잃었다.
부실한 공론화는 ‘시민사회 대 산업계’라는 낡은 대립 구도를 다시 불러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완화됐던 이분법은, 최근 두 차례 공론화를 거치며 더 거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공론화가 되레 불신을 키워 갈등과 분열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9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졸속 공론화가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공론화 과정에 원전에 대한 전통적 찬반 논쟁이 되살아났다. 이 토론은 본질적 토론에 가까워서 두 차례 토론으로 한 게 졸속 아니냐(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그간 공론화의 한계를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공론화 절차를 준비 중인 사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4대강 재자연화와 탈플라스틱 정책, 기후대응댐 건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등 정부가 공론화를 예고한 현안들이 줄지어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회적 파급력이 커, 모두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공론화 절차도 출발이 순탄치 않다. 지난해 12월 기후부가 발표한 탈플라스틱 대책은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었다. 탈플라스틱 대책 공론화를 내세워 열린 대국민 토론회는 정부안을 공개하는 행사에 그쳤다. 결국 이날 공개된 탈플라스틱 대책은 알맹이 없는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후부는 추가 의견 수렴을 약속했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국회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공론화도 안심하기 어렵다. 일정은 촉박하고 시민 참여는 제한적이어서 벌써부터 공론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시민들의 시선이 국회를 향하고 있다.
반기웅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