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내 증시가 급락한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표시돼 있다. 성동훈 기자
최근 대외 악재에도 꺾일 줄 모르던 코스피가 이란 사태 이후 첫 거래일인 3일 5800선도 내주면서 7% 넘게 폭락했다. ‘동학개미’가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받아냈지만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유가 상승이라는 대형 악재를 뛰어넘진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이 이틀간 코스피에서 ‘12조원 팔자’에 나서며 ‘셀 코리아’ 우려도 나오지만, 증권가에선 ‘차익 실현’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날 코스피(-7.24%)의 하락률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국내 증시가 폭락했던 2024년 8월5일 ‘블랙 먼데이’ 이후 가장 높았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변동성지수(VKOSPI)는 이날 16.37% 오른 62.98에 마감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여파로 증시가 폭락한 2020년 3월19일(69.24) 이후 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투자자의 수급이 몰린 삼성전자(-9.88%), SK하이닉스(-11.5%), 현대차(-11.72%)가 유례를 찾기 힘든 급락세를 보이며 투자자가 체감하는 공포 수준은 더 컸다.
증시가 크게 흔들린 것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능성 때문에 미국 기준금리 인하 횟수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횟수가 줄면 향후 시장 예상보다 유동성 공급이 줄어 증시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상 지정학적 위기 시엔 달러, 금, 국채 등 안전자산이 강세를 보이지만 이번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하 둔화 우려로 주요국 국채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다.
이날 국내 증시가 유독 타격을 입은 것은 코스피가 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빠르게 올랐다’는 점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 사태 이후 대만 가권지수(-3.08%), 중국 상해종합지수(-0.97%)는 물론 한국과 유사하게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닛케이225지수(-4.43%)와 비교해도 코스피의 낙폭이 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매를 한국이 한꺼번에 맞는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한국이 더 많이 떨어졌다”며 “한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오르다 보니 조정도 더 세게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피 급등으로 리밸런싱(투자비중 재조정)과 차익 실현에 나서야 하는 외국인 입장에선 이번 이란 사태가 적절한 매도 기회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은 2거래일간 코스피에서만 12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이 중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순매도액만 11조5000억원이 넘는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오르면서 외국인은 유지해야 하는 한국 비중이 초과됐고, 비중 초과분을 매각했다고 보고 있다”며 “환율이 크게 뛰었으니 차익실현 욕구가 있는 투자자들도 함께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증권가에선 이번 사태가 기업 이익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외국인 투자가 다시 유입돼 코스피가 반등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
김수현 센터장은 “외국인 입장에선 환율이 고점에 다다르면 환차익을 노리고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며 “코스닥에 대해선 정부 정책을 보고 오히려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전쟁은 금융시장에 일시 충격을 줬지만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장기적으로 훼손시키진 못했다”며 “단기적 패닉(공포)에 휩쓸린 투매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 상황이 악화되거나 4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가 시장 기대를 밑돌 경우 인공지능(AI)발 불안심리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