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온갖 잡념이 몰려들 때가 있다. 불길한 걱정이 꼬리를 물거나 미움과 분노가 차올라 판단력이 마비되기도 하고, 욕심이나 유혹에 휩싸여 절제력을 잃는 일도 있다. 시간을 두고 한발 물러나 보면 달리 보일 사안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쉽지 않다.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릉 오죽헌에 들어가려면 자경문(自警門)을 거쳐야 한다. 이곳에서 유년을 보낸 율곡 이이가 쓴 <자경문(自警文)>에서 이름을 따왔다. 열여섯 나이에 어머니이자 선생님인 신사임당을 여읜 율곡은 시묘살이를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에 심취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유학 공부에 힘을 쏟아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때 자신을 다잡고자 하는 뜻을 담은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율곡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던 듯, 이렇게 자신을 경계했다.
“마음이란 살아있는 생물이다. 안정시킬 만한 힘을 갖추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게 마련이다. 상념이 어지럽게 일어날 때 의도적으로 그것을 끊으려 하면 오히려 더욱 어지러워진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니 마치 내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끊어내려 하면 할수록 끊어내려는 생각 자체가 망념이 되어 내 안에 가로놓인다. 그럴 때는 의식을 거두어들이고 가볍게 관조하기만 할 뿐, 그 생각에 휩쓸려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저 놓아두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까? 율곡은 “일에 전념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라고 했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일 하나하나를 때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생각을 내려놓고, 일이 있으면 생각해서 합당한 방도를 얻는다. 그런 뒤에 책을 읽고 자신을 성찰한다.
그 시간이 쌓여서 홀로 있을 때도 늘 마음이 안정된 뒤에 비로소 아무 사심 없이 “기수에서 몸을 씻고 노래하며 거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있는 그 경지가 무엇인지, 율곡의 손길을 품은 채 600여년 같은 자리에서 새봄을 피워내고 있는 오죽헌 매화를 만나 물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