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키프로스에 위치한 영국 기지 아크로티리 입구. 이 기지는 전날 밤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피해가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경기도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 120만명이 거주하는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에 유럽 군사력이 집결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3일(현지시간) 엑스에 “방금 키프로스 대통령과 통화해 무인기(드론) 대응 능력을 갖춘 헬기를 파견하고 HMS 드래건을 해당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알렸다”고 밝혔다.
HMS 드래건은 영국 해군의 45형 구축함 6척 가운데 하나로 승조원 약 200명이 탑승한다. 공중 위협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첨단 레이더와 ‘시바이퍼’ 대공 미사일 체계를 갖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TV 연설에서 “키프로스에 추가 병력을 보강하겠다”며 “프랑스 호위함 한 척이 이날 저녁 키프로스 인근 해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도 지난 2일 F-16 전투기 4대와 드론 신호 방해 체계를 탑재한 호위함 2척을 키프로스로 보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날 키프로스 남부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 대한 드론 공격 이후 본격화됐다. 드론 1대가 항공기 격납고에 일부 손상을 입혔고, 추가로 접근한 드론 2대는 영국 전투기로 격추됐다. 드론 발사 지점은 공식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레바논에서 발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공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유럽 영토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AP통신은 4일 “지리가 곧 운명이라면 키프로스가 그 대표 사례”라고 보도했다. 키프로스는 수 세기 동안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로마인, 오스만 제국, 영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현재의 위기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유산과 직결된다. 키프로스가 1960년 독립할 당시 영국은 섬 전체 면적의 약 3%를 ‘주권 기지 구역(SBA)’으로 남겨두었다. 아크로티리와 데켈리아는 단순 임대 기지가 아니라 공식적인 영국 해외 영토다. 영국 군법이 적용되며, 중동 전역을 작전 반경에 두는 공군기지와 정보 수집 시설이 밀집해 있다. 아크로티리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작전 당시 영국군의 핵심 전진 기지였고, 현재도 중동 분쟁을 감시하는 서방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1974년 이후 북부의 튀르키예계 지역과 남부의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으로 분단된 상태다. 수도 니코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수도로 남아 있다. 키프로스는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유로화를 도입하며 서방 진영에 편입됐다. 니코스 크리스토둘리데스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친미 기조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키프로스를 EU와 중동을 잇는 ‘가교 국가’로 자리매김하며 이스라엘·레바논·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과 외교·국방 협력을 확대해왔다.
드론 공격 이후 키프로스 정부는 “어떠한 군사 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자국 영토 내 영국 기지다. 키프로스 정부는 영국이 군사 작전에 기지를 사용할 경우 사전 통보해야 한다고 밝히지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니다.
정치학자인 안나 쿠키데스-프로코피우는 AP통신에 키프로스의 상황을 “당구대 구석에 놓인 공”에 비유했다. 조용히 놓여 있다가도 다른 공들이 충돌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포켓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이미 어느 편을 선택했다”며 “이제는 지리적 운명에서 비롯되는 취약성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