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지 이틀 뒤인 3일(현지시간) 유조선들이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해안에 떠있다. 로이터통신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이 원천 봉쇄되면 석화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국내 석화 업체들은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원료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한다. 정부는 7개월분의 원유 비축량이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원료 수급처를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4일 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인해 원유 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는 지역은 한국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로 지목된다. 아시아 국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이란 등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 국가에서 원유를 주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해 6월 에너지 정보 업체 ‘보텍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분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원유는 중국이 540만배럴/일(b/d), 인도 210만b/d, 한국 170만b/d, 일본 160만b/d로 나타났다. 반면 유럽은 50만b/d, 미국 40만b/d 수준이었다.
중국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중국이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으로부터 들여오는 원유는 전체 원유 수입의 3분의 1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전쟁 등으로 수입 길이 막혔다.
문제는 한국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수입 나프타 중 54%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올 정도로 이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게다가 석화 기업들이 적자 타개를 위해 정부 주도로 사업재편 논의를 이어가는 와중에 중동 사태가 터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사태가 길어지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했던 나프타의 물량을 국내로 전환하거나 대체 공급망을 지원하는 등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업계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석화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게 되면 빠르면 일주일 뒤, 늦어도 2주 뒤부터는 수급에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난 주말 이후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는데, 글로벌 수요가 부진해 석화 제품에 원가 부담을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데 대체 물량처를 찾는 게 급선무”라며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대체 물량을 구한다 해도 가격 측면에서 가치가 있을지도 고민거리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동의 상황이 불확실해 대체 물량을 찾아도 장기계약은 힘들고 스폿(단발)성으로 계약해야 할 텐데, 가격이 비싸지면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