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내란 1심 재판부의 무기징역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정치가 거대한 연극이라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달 20일 ‘윤석열 내란’ 입장은 부조리한 실험극 같았다. 극단 세력의 도움으로 당권을 쥔 그가 그들을 부정해야 하는 정치적 곤경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적 예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절윤’ 요구를 침묵으로 뭉갤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무죄추정” 운운하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정당 대표 입장이라기엔 하나하나가 참담했지만, “분열은 최악의 무능”이라며 내놓은 ‘덧셈 정치’ 정의는 특히 충격이었다. 장 대표는 윤어게인 세력을 두고 “우리와 조금 다르다 해도 다양한 목소리와 에너지를 담아내는 게 국민의힘이 해야 할 역할”이라 했다. “함께 싸우고 계신 애국시민”을 호출하며 “국민의힘 깃발 아래 힘을 합쳐달라”고도 했다.
12·3 비상계엄을 구국 결단인 양 윤석열을 옹호하고 온갖 음모론으로 국민 통합을 부정하는 극단 세력을 ‘당원’으로 격상시켰다. 보수 1당을 공동체 안녕을 위해 도태돼야 할 극단 세력의 ‘숙주’로 제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자격이 있는지 따지는 걸 떠나 장 대표가 금단의 열매와도 같은 이들을 세력 기반으로 공식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정치는 은원이 분명하다. 배신이 저류에 흐르지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갚음도 분명하다. 정치 또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거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동혁의 ‘호윤(護尹·윤석열 지키기) 입장문’은 그가 극단 세력에 내민 정치적 계약서라 할 만하다.
장 대표를 보며 정치에서 ‘신뢰’를 생각하게 된다. 신뢰 없는 정치가 존재할 수 있는가. 배반의 기술로 자신과 그가 속한 정당의 생존을 도모하는 이런 모순이 존재해도 되는가.
장 대표의 ‘호윤’은 세 가지 점에서 공동체의 신뢰를 배반했다. 국민을 기망하고, 정치의 규범을 거부하며, 파국의 위험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우선 ‘무죄추정’의 기묘한 논리로 내란이란 정치적 사건을 법적 문제로 표변시켜 국민 인식을 뒤틀려 했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소피스트들의 수법인 ‘골대 옮기기’라 할 것이다. 그간 재판부들의 일관된 판단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무장 군인을 국회에 투입한 순간 내란은 성립된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장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법적 궤변으로 골대를 옮긴 건 시간을 벌려는 임시변통일 것이다.
반사이익에 기대는 한국 정치의 나쁜 풍토에 대한 허황한 기대가 엿보인다. 정치를 일종의 ‘투기 사업’으로 여겨온 그가 정치 풍향 변화에 베팅한 것일 게다(김광호 칼럼 ‘장동혁 정치’가 드러내는 불안). 그래서 법은 선동의 외양일 뿐 본질은 정략이다.
두 번째로 공동체의 규범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대통령은 그 지위에 요구되는 역할이 있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를 ‘역할행동’이라 한다. 한 사회가 긴 시간에 걸쳐 축적해온 합의로 통합의 전제가 된다. 장 대표는 윤석열 파면으로 헌법적·정치적 기준이 세워진 대통령 역할행동에 대한 판단을 도외시했다. 마찬가지로 정당 대표에게도 걸맞은 역할행동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국가·사회는 물론 자신이 속한 정당의 통합과 지속에 책무를 다해야 한다. ‘절윤’을 하면 지지 기반도 권력도 잃게 될 터. 반면 ‘호윤·친윤’은 국민의힘 몰락을 의미하는 딜레마에서 장 대표의 선택은 ‘자신’이었다.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에서조차 “저기 무슨 대표고”라는 분노가 끓는 이유일 게다.
마지막으로 정치와 공동체 파괴의 위험성을 외면했다. 호윤이 가져올 결과다. 개인 영달을 위해 극단 세력을 불러들이는 건 독재의 수법이지, 민주국가 정치인의 선택이 아니다. 장 대표 또한 반동 세력을 정치에 이용하는 메피스토펠레스적 거래의 위험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세력은 정당도 국회도 국가도 혼돈과 파멸로 이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과 대공황의 절망기에 선동적 극단주의로 대중과 권력을 장악해 정치를 해체하고 종국엔 국가마저 파탄 낸 나치가 준 교훈이다.
이제 그를, ‘장동혁의 국민의힘’을 놓을 때가 됐다. 국민을 실험실에 포획된 실험대상쯤으로 여기며 ‘진리를 모독’할 수 있다 계산하는 장 대표의 반지성을 더는 용인해선 안 된다. 공화와 신뢰가 신념인 보수라면 마땅히 나서야 할 ‘역할행동’이다. 그리된다면 장 대표의 호윤 도박은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침묵으로 극단 세력을 잠복시키는 것보단 낫다. 괴물이 괴물을 낳는 악순환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게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정당한 결말이다.
김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