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언 땅에 시큰둥했던 강아지가 온종일 마당에 나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과 발을 씻겨야 한다. 무른 흙을 밟고 다니며 곳곳에 코를 파묻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따라 나도 흙을 한 줌 쥐고 코를 가까이 대본다. 미지근해진 흙에서 약간의 단내와 옅은 시큼함이 올라온다. 살아 있는 것의 냄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뿌리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까.
아직 삭막한 3월의 땅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미생물이 깨어나고 공기가 토양의 틈을 부지런히 오간다. 어느덧 시골 생활 3년째. 마당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일에 여전히 서투르지만, 흙이 숨 쉰다는 말이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토양은 숨을 쉰다. 흙의 허파는 흙 속의 생명체들이다. 박테리아, 연체동물, 절지동물, 식물의 뿌리들이 산소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이 기체 교환은 육체를 가진 모든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을 가졌다는 것은 상처 입고 회복하는 존재라는 것.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흩어진 흙의 입자들은 벌어진 틈을 숨구멍으로 삼는다. 상처가 통로가 되고, 숨은 더 깊어진다. 마당 전체가 속 깊은 어른의 등처럼 보인다. 가만히 손을 대면 온기가 전해진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를 읽은 적이 있다. 하늘 여인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하늘 세계에 살던 한 여인이 나무가 뽑히며 생긴 틈으로 떨어진다. 아직 땅이 없던 시대, 온통 물로 뒤덮인 세상으로 여인이 떨어지자, 기러기들이 날개를 펼쳐 받아낸다. 거북이는 다가와 등을 내어준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인을 물 위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한 동물들은 물속 깊이 내려가 흙을 가져오기로 한다. 수달과 비버, 철갑상어가 먼저 뛰어들지만 모두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사향뒤쥐 한 마리가 한 줌의 흙을 물고 올라온다. 거북이는 그 귀한 흙을 등 위에 올리고 하늘 여인은 그것을 펼쳐 바른다. 여인이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흙을 밟자, 거북의 등 위에서 땅이 서서히 넓어진다. 그렇게 대지가 만들어진다.
낯선 여인이 떨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땅의 근원이라는 이 이야기가 내게는 어쩐지 믿음직스럽다. 절대적인 창조자가 아니라, 떨어지는 자와 실패하는 자,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상상은 근사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 땅에 툭 던져진 우리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그들의 등에 기대 자라다가 언젠가는 다시 등을 내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를 떠받치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강아지가 코와 앞발로 헤집어놓은 자리에서 땅벌레들이 기어 나온다. 곧 푸른 것들도 올라올 것이다. 거북의 등 위에서 자라난 땅은 그렇게 많은 것을 품는다. 안기고, 업히고, 등을 내주며 이토록 커다란 존재가 된다.
이른 봄볕이 흙을 덮는다. 그림자도 조금 짙어진 것 같다. 한참 동안 흙냄새를 맡던 강아지가 내게 다가온다. 내 품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는다. 내게도 3월의 냄새가 나는 걸까.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지금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뿌리가 큰 숨을 내뱉는다.
신유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