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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에 산다는 것

입력 2026.03.04 20:03

한때 삼성그룹을 모티브로 인기를 끌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죽음과 환생, 복수의 서사가 중심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미래를 미리 아는 한 인물의 ‘실패 없는 베팅’이 자리한다. 그가 하는 투자, 사업, 결정은 백퍼센트 성공한다. 왜냐하면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가 이렇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2000년대 초 유행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한국 사회의 전환을 상징한다. 전자는 노동소득의 한계를, 후자는 불안한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형을 강조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성실한 임금 축적 모델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축과 근면이 미래를 보장하던 확정성의 시간은, 변화를 감지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확률의 시간으로 이동했다.

산업사회에서 임금은 단순한 소득이 아니었다. 매달 반복되는 보수는 삶의 예측 가능성을 구성했다. 사람들은 그 반복성을 기반으로 주거와 교육, 노후를 설계했다. 노동은 현재의 노력을 미래의 안정으로 연결하는 통로였고 임금은 생계를 넘어 삶의 안정성과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서사를 제공했다.

그러나 평생직장이 줄어들고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임금은 자본수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노동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임금소득의 지위는 더욱 불안정해져간다.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이 일반화될 경우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생산의 중심이 아니다. 노동이 더 이상 가치 생산의 핵심이 아니라면, 임금 역시 삶의 중심적 소득 형식으로 남기 어렵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금융수익, 자산수익, 투자수익과 같은 자본소득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경제구조의 재편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방식의 전환을 동반한다. ‘성실과 반복’의 세계는 ‘확률과 불안’의 세계로 이동한다.

이제, 가계의 미래는 임금소득의 축적이 아니라 자산의 변동성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노동임금의 실제 가치가 낮아지면서 임금의 선형적 축적이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되었고, 그 대신 확률과 위험을 전제로 한 ‘베팅’이 삶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투자 행태가 문화와 일상 속으로 확산되어가면서 청년들의 눈은 점점 충혈되어가고 있다. 직업은 안정의 근거라기보다 현금흐름 확보 수단으로 축소되고, 자산 변동은 삶의 중심 관심사가 된다. 임금이 제공하던 시간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자본흐름에 대한 긴장이 상시화될 때, 불확실성은 경제적 조건을 넘어 ‘존재의 방식’이 된다. 예컨대 젊은이들 사이에 직장은 쉽게 그만둘 수 있는 부업처럼 되어버렸고, 코인과 주식 투자가 전업이 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근로의 개념, 성실의 개념, 신뢰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견실한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실하게 헌신하는 노동자들이 이룬 나라였다. 하지만 이런 신뢰와 성실성의 기반이 무너져가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한국의 투자환경 역시 이 구조적 전환 속에 있다. 제도화된 공모시장이 존재하지만, 다수의 투자는 비형식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제한된 정보와 네트워크 신뢰에 의존하는 사적 투자에서는 실패의 확률이 개인에게 집중된다. 투자사기와 불완전판매 문제는 억지력의 체감도를 낮추고, 피해 회복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서민의 주머니를 노리는 투자사기가 극성을 부리며, 그러한 경제사범에 대한 형사처벌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사기에 가깝더라도 단지 투자라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받는 일들이 허다하며, 그 처분 역시 집행유예 비중이 높다보니 한탕하고 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는 성실한 사업 참여라기보다 변동성에 대한 투기적 베팅이 되기 쉽다.

한때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며 끝없이 상승할 것처럼 보이던 국면도 미·이란 전쟁으로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이 개방된 구조 속에서 한국 금융시장은 환율, 금리, 무역전쟁, 국제정세 등 외부 요인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이런 조건 속에서 단순히 “집을 팔아 주식을 사라”는 식의 구호가 맞는 것일까? 롤러코스터와 같은 변동성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투자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확률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사회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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