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기간에 맞춰 대형 전시공간에서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가 선을 보인다. 신문사나 방송사, 혹은 전시 전문업체가 외국의 미술관 등에서 소장품을 빌려와 치른다. 다른 곳들은 그만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는 대부분 서양미술,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전시(후기인상주의 포함)가 주를 이루었다.
상당한 비용을 투입한 기획사 입장에서 최대한 수익을 보장받으려면 많은 관람객을 동원해야 하니 대중이 좋아한다고 여기는 작품을 전시해야 하고 그런 맥락에서 선택되는 것이 인상주의다. 그림 안에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 난해하지 않고 상당히 익숙해서 거부감도 없는 인상주의 그림이 가장 적합한 사례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이 어려워하거나 낯설어한다. 이처럼 블록버스터 전시는 철저히 상업적인 계산 아래 조율된다.
그래도 매번 유사한 작품을 빌리는 데 머물지 않고 뛰어난 작품을 잘 선별하는 안목과 능력이 기획사에 요구된다. 뛰어난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세계를 보는 색다른 눈과 감각을 안겨준다. 기존의 상투적이고 익숙한 것들에 균열을 내준다. 그것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다소 고통스럽고 힘겨운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내 자신이 확장되고 어제의 나와 결별한다. 그런 자각과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엄선해 제공해주는 것이 기획전시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엉터리 작품들이 대단한 것처럼 선전되며 대형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관객들을 속이고 미술계를 희롱하며 질에 대한 논의를, 까다로운 심미안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작업에 전념해온 뛰어난 작가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접하는 작품의 수준도 좀 빈약하다. 회화는 드물고 드로잉이나 판화가 다수인 경우도 많다. 그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기 드물다. 보고 나면 좀 속았다는 생각도 든다. 정직한 전시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선전으로 눈가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인상주의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상주의의 어떤 작품들을 선별했는지, 그리고 그 작품들이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내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상주의는 수백년간 지속된 재현주의를 문제 삼으며 신화나 종교, 이데올로기의 도상화에서 벗어나 미술 그 자체를 다루고자 한 급진적 화풍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미술, 특정 텍스트에 저당 잡힌 과거의 미술에서 해방됐다. 동시에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된, 따라서 그림이 입체적이고 조각적이어야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탈조각적인, 탈환영적인 그림을 추구하게 됐다. 또한 화폭이라는 납작한 사각형 틀과 물감, 붓질 자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그것을 해명하는 것이 미술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이전의 재현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원근법을 지우고 그림이 물감과 붓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한편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관찰자, 화가 자신이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로 이동시킨 것 또한 인상주의자들이었다. 인상주의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이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데 결정적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그림이 지닌 진정한 가치나 의미에 대한 언급이 드문 것이 기존 인상주의 전시들이다. 그저 유명한 몇몇 작가들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전시처럼 선전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