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에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있다. 대체로 지방선거에 눈길이 가겠지만 학부모와 학생은 향후 교육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교육감 선거를 주시할 것이다. 교육감은 관할 지역 교육 예산 집행권과 인사권을 한 손에 쥐고 미래 세대 가치관을 형성하는 막강한 자리라, 소위 ‘교육 소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깜깜이 선거’라는 부끄러운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누구나 입을 모아 미래 세대 교육을 걱정하면서도 교육감 선거는 여전히 유권자에게 후보자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치러진다.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가 누구인지, 어떤 차별성이 있고 어떤 교육 철학을 가졌는지 모른 채 투표용지를 마주하는 일이 잦다.
이와 관련해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려 한다. 수년 전, 필자는 모 교육단체로부터 교육감 출마를 진지하게 권유받았다. 필자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결심만 하면 정책, 자금, 인력을 모두 지원하겠다”며 설득했다. 긴 대화 끝에 그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해서 당선된다면 그때의 교육감은 저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입니까?”
실현 여부를 떠나 준비되지 않은 내가 타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당선됐다면 나의 교육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허수아비 교육감’이 됐을 것이다. 당시 그 교육단체가 나를 점찍었던 이유를 들으니 정책적 역량보다는 대중적 인지도 때문이었다. EBS 국어 강사 출신으로 학부모에게 익숙하고 입시 전문가로서 언론 노출이 잦으며 30여년간 공·사교육에 두루 몸담았다는 이력이 표를 받기에 최적이라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현행 교육감 직선제의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교육감 선거 승리 요인이 후보의 교육 철학이나 정책이 아니라 단순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인지도에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가 후보를 잘 모르니 이름이 익숙한 현직 교육감은 막강한 프리미엄을 누린다. 반면 신인 후보자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슬로건과 진영 논리에 매몰돼 결국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느냐’는 이념적 배경에만 치중하게 된다. 교육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된 직선제가 오히려 교육을 정치의 진흙탕으로 밀어 넣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직선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높다. 주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해 교육 자율성과 민주성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지역 특색에 맞는 교육을 펼칠 수 있다는 논리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된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진영 대결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으며 과도한 선거 비용은 당선 후 각종 비리와 인사 잡음의 불씨가 되곤 한다.
국가의 교육 정책과 지향점은 사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보다 국가 차원에서 일관되게 수립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직선제의 대안으로 시도의회 청문회를 거친 임명제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십수년간 어렵게 유지해온 민주적 절차를 하루아침에 폐기하는 것 역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깜깜이 선거를 끝내기 위한 실질적 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가 거론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에만 매몰되기보다 차라리 정당 공천을 허용하거나 시도지사 후보와 짝을 이뤄 선거를 치르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는 지지 정당이나 시도지사 후보 정책 기조에 맞춰 교육감 후보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적어도 어느 당이 어떤 교육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인기투표는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당선 후에도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 협력이 강화돼 효율적으로 교육 정책을 펼 수 있다.
올해도 진영별 후보 난립과 단일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누가 더 나은 교육을 설계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단일화에 성공해 인지도를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구조는 이제 끊어내야 한다. 무관심과 인지도 경쟁으로 점철된 교육감 선거는 올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지금 같은 깜깜이 선거로는 교육의 내일을 담보할 수 없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