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패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6연패가 넘어가면 미소가 사라진다. 두 자릿수 연패가 가까워지면 상황은 심각하다. 두산과 KT 사령탑을 지낸 김진욱 전 감독은 “연패가 길어지면 어떻게 아는지 우리 집 강아지도 눈치를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수단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연패 숫자가 ‘10’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행사’가 열린다. 예전엔 다들 라커룸에 ‘바리깡’ 2~3개씩은 두고 있었다. 중고참급 선수들이 솔선수범에 나선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밀며 연패 탈출 의지를 다진다. 다음날 다들 일부러 모자를 벗고 빡빡머리를 드러낸 채 그라운드에 나와 경기 전 연습을 한다.
삭발을 하면 귀신같이 연패가 끝나는데, 그게 삭발 때문인지, 불운이 다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포츠심리학에서 이를 ‘응집력 강화’라고 부른다. 집단의 동질성을 높이고, 이에 따른 수행능력 향상 효과를 기대하는 행위다.
스포츠심리학에서 응집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사회 응집력(Social Cohesion)과 과제 응집력(Task Cohesion)이다. 사회 응집력은 관계 강화에 따른 것이고, 과제 응집력은 공통의 목표를 기반으로 팀 전체의 힘을 모은다.
연패를 끊는 건 삭발이 아닌 목표
관계의 시대 끝나고 과제의 시대로
‘우리’가 아닌 ‘무엇을’이 중요해
그런데 정치는 ‘바리깡’만 만지작
한국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사회 응집력이 강했다.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과 준우승을 하자 LA타임스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어릴 때부터 서로를 잘 안다. 대표팀에 모이자마자 형, 동생으로 정리가 싹 된다. 그게 한국 야구의 승리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간신히 이름 정도만 알고 모이는 미국 대표팀과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삭발도 마찬가지다. 다 함께 머리를 박박 깎음으로써 ‘관계’를 강화한다. ‘우리가 남이가’를 체화하는 예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야구도 삭발하지 않는다. 세대도, 사회도 바뀌었고 사회 응집력보다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제 응집력이 효과적인 시대가 됐다.
지난해 KBO리그 챔피언 LG의 우승 비결은 ‘실용적 개인주의’였다. 염경엽 감독의 지론이기도 하다. 팀을 위한 억지 희생보다 각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팀 시너지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염 감독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다음 타자를 위해 투구를 지켜보는 것보다 초구라도 치기 좋은 공이 왔을 때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것이 결국 팀을 위한 길”이라고 설명한다.
염 감독은 히어로즈 감독 때부터 팀 훈련은 최소화했다. 스프링캠프 훈련이 오후 1~2시면 끝나기 일쑤였다. 다만, 선수 개인의 루틴은 무척 강조했다. 개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 훈련 방식을 찾고 그걸 꾸준히 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결국 팀 전체가 성공하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염 감독은 애써 ‘원팀’을 강조하지 않는다. LG 선수들 역시 집합과 미팅보다는 자기계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개인이 최고의 플레이를 만들고, 그것이 모이면 진짜 강한 팀이 된다. 타자에게 최선의 팀플레이는 희생번트가 아니라 안타와 홈런이고 투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팀플레이는 삼진이다.
한국 사회도 사회 응집력의 시대에서 과제 응집력의 시대로 넘어왔다. 삼성전자로 하여금 ‘팀(계열사 혹은 다른 부문)을 위해 인센티브를 희생(연봉의 50% 제한)하는 것이 맞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대다.
그래서 정치가 더 후진적으로 보인다. 과제를 설정하지 못하고, ‘우리’ 혹은 ‘당원’이라는 사회적 관계에 집착한다. 특히 연패에 빠진 야당은 자꾸만 (옛날 야구처럼) 바리깡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다. 여차하면 삭발할 기세다. 삭발에 동참하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부르짖는 모양새다.
야구에서 삭발이 사회 응집력을 대표했다면 과제 응집력을 대표하는 것은 ‘세리머니’다. 목표를 정하고 안타를 칠 때마다 그 목표를 공유하는 동작을 선보인다. 공통의 목표를 되새기는 의식이다. 이번 WBC 대표팀은 ‘전세기 타고 2라운드가 열리는 마이애미로 가자’는 뜻의 ‘전세기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선수들은 홈런 치고, 안타 칠 때 두 팔을 펴고 비행기 모양을 만든다. 야구가 잘 보여주듯 관계가 아니라 목표가 팀을 강하게 만든다.
이용균 콘텐츠랩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