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일극체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정통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5극3특(5대 메가시티, 3대 특별자치권역)’ 체제가 그것이다. 5대 메가시티는 수도권,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남·광주이고, 3대 특별자치권역은 강원, 전북, 제주이다. 메가시티는 교통망을 연결해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것을 목표로, 특별자치권역은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5대 메가시티가 단순히 지역 내 교통망 연결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과 직장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나고 자란 곳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목표일 것이다. 정부는 오는 6월3일 선거 전에 행정통합을 완료해 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원활히 추진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추진이 잘 안 되는 곳에는 정치인들 간에 존재하는 복잡한 이해 상충이 원인이라고 한다.
인구와 경제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지방이 소외되는 문제는 오래전에 지적됐다. 이미 김영삼 정부(1993~1998) 당시 그에 대한 정책이 수립됐다. 이후 이어진 정부마다 관려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성공적이지 못했고 수도권 집중도는 계속 높아졌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하게 그 성립에 오랫동안 진통을 겪은 정책이 있었다. 대동법이 바로 그것이다. 방납의 폐단에 대한 대책은 왕이 바뀔 때마다 계속 세워졌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 끝에 나온 것이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세금개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세금개혁이다. 심지어는 개혁을 성공시킨 후 그 성공시킨 정권이나 권력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세금개혁을 추진한 권력이 그 개혁의 긍정적 효과를 증명하고 권력도 유지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동법은 그런 희귀한 사례에 해당한다.
대동법에 대한 반대는 강력했다. 그 이유도 한 가지만이 아니었다. 개혁의 정도가 너무 크다는 이유, 개혁으로 인한 개선 효과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이유, 그리고 개혁으로 인해 기존에 누리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 등이 한꺼번에 작동했다. 이를 뚫고 1651년(효종 2) 충청도에서 대동법이 처음 실시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잠곡 김육(1580~1658)이다. 그런데 그조차 충청도 대동법을 추진하면서 충청도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대동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했다.
충청도 대동법에 이어서 수년 뒤 전라도에서 대동법이 실시됐다. 그런데 충청도보다 전라도에서 대동법에 대한 저항은 더 컸다. 전라도가 충청도보다 땅이 더 넓고 대동법에 반대하는 토호가 더 많았다. 전라도 대동법이 지역별로 두 번으로 나뉘어 성립됐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전라도에서 대동법이 성립되기 전에 김육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결국 전라도에서 대동법이 성립됐다. 그 근본 원인은 충청도 대동법이 보여준 실제 효과 때문이다. 급기야 이 효과를 눈으로 본 전라도 사람들이 충청도로 이사를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누구도 전라도에서의 대동법 실시를 막을 수 없게 됐다. 한편 1670~1671년에 ‘경신대기근’이 조선을 휩쓸었다. 기아와 전염병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즈음 대동법 성립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경신대기근 후 “백성 모두가 신해년(1671)을 겪으면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대동법의 은혜”라는 말이 나왔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결국 근본은 그것을 원하는 민심이다.
이정철 퇴계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