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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은 지정학적 위험을 어떻게 반영할까

입력 2026.03.05 20:06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금융시장은 지정학적 위험을 어떻게 반영할까

금융시장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근거로 자신의 돈을 투자하는 장이다.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는 효율성을 갖췄다는 믿음 때문인지, 금융시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로운 예언자’로 자주 묘사되곤 한다. 금융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특정 분야에서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가늠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정학적 위기 앞에서 금융시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통찰력 있는 예언자라기보다는, 기출문제를 외워 시험장에 들어선 ‘성실한 수험생’에 가깝다. 시장은 과거에 비슷했던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났는지를 기억하고, 그 ‘학습효과’에 기반해 해석할 따름이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개전 D+30일 코스피 등락률’ 운운하는 주장은 대부분 이런 학습효과에 기반하고 있다. 1991년 1차 걸프전, 2001년 테러와의 전쟁, 2003년 2차 걸프전, 그리고 2026년의 미국·이란 충돌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은 중동의 정정불안으로부터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반응이 나타난 근거는 명확하다. 지난 수십년간 중동에서의 무력 충돌이 장기전으로 치닫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의 펀더멘털을 뒤흔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충돌이 과거의 패턴과 달리 장기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시장의 ‘학습된 낙관’은 투자자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시장이 학습효과에 의존하다 낭패를 본 대표적인 사례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증시다.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울리자 뉴욕증시는 공포에 질려 다우지수가 단숨에 10% 가까이 폭락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뉴욕증권거래소는 4개월 넘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거래 재개 이후 시장은 깨달았다. 전쟁터는 유럽이었고, 미국은 거대한 병기창 역할을 하며 유례없는 수출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1914년 말부터 2년간 다우지수가 114% 폭등한 배경이다. ‘남의 땅에서의 전쟁은 주식시장에 호재’라는 기억은 투자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과거 ‘중동 리스크’ 영향 크지 않아

25년 뒤인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시장은 1차 대전의 기억을 소환했다. 전쟁 소식에 다우지수는 즉각 16% 넘게 치솟았다. 1차 세계대전 때처럼 전쟁 특수가 반복될 것이라는 ‘학습효과’에 따른 반응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과거와 달랐다. 독일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의 일본이 팽창 노선을 노골화하면서 미국이 전쟁의 당사자가 될 위험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기점으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발을 들여놓았다. 미국 증시는 1939년의 고점 이후 1942년의 저점까지 40% 가까이 하락하며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전쟁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에는 일정한 패턴도 존재한다. 무력 충돌이 실제로 벌어지는 당사국의 주식시장은 대체로 큰 타격을 받는다. 전쟁은 생산시설과 인프라를 파괴해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폐쇄됐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증시에서의 주식거래는 중단됐고, 러시아는 증권거래소가 일시 폐쇄됐다가 거래를 재개했으나 국부펀드의 노골적 시장 개입과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 금지가 공존하는 ‘반쪽자리’ 시장으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중동의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고 있는 이스라엘 증시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의 경우 주가의 방향은 공급망 교란 여부와 이에 연동된 인플레이션 압력에 영향을 받곤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가 그랬다. 전쟁 발발 직후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됐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고, 그 결과 장기 금리가 급등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는 큰 폭의 조정을 겪었다. 전쟁 그 자체보다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과 통화 긴축이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준 셈이다.

전쟁 장기화·중앙은행 정책이 변수

이번 미국·이란 전쟁으로 금융시장이 추가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면 그 경로는 2022년 러·우 전쟁 직후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동산 원유의 공급망이 훼손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중앙은행이 긴축에 나서고 시장의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모습이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시나리오다. 결국 전쟁의 장기화 여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지만, 2022년의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2022년에는 러·우 전쟁 이전부터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막바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업 차질로 동남아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흔들리는 등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해지고, 서구 국가들에서는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됐던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보상 소비’도 수요 측면에서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여기에 러·우 전쟁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아졌다.

2022년과는 달리, 요즘의 경제 여건은 공급망 교란과 보상 소비의 폭발이라는 특수한 과열 국면을 지나온 상태다.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할 수는 있겠으나, 이를 제외한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은 당시보다 현저히 낮다.

향후 중앙은행의 행보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쟁이 자극할 수도 있는 인플레이션을 중앙은행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 상승은 수요가 넘쳐서 생기는 ‘발열’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한 ‘비용 전이’ 성격이 짙다.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에 대해 중앙은행이 기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공급 충격의 일회성 성격을 인정하며 인내할 것인가 하는 정책적 선택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수요 억제책인 금리 인상을 공급망 문제의 해결책으로 오용한다면, 시장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정책의 오류’라는 암초를 만날 수 있다. 전쟁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물가 상승이 현실화된 이후에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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