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주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4월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정부 합동단속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재외교포 A씨는 2023년 9월 혈중알코올농도 0.218% 상태로 차량을 1㎞ 정도 운전해 면허취소와 함께 벌금 10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습니다. 2024년에는 무면허로 또 음주운전을 해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A씨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입국 규제 지침’에 따라 2025년 5월 ‘6개월 입국 금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노동자 B씨(59)는 2017년 부부 싸움을 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폭행 혐의를 받았는데 혐의가 무겁지 않아 훈방됐습니다. 그러나 B씨는 부인이 신원 보증을 철회해 미등록 이주민이 됐고 한국에서 강제 퇴거된 뒤 입국 금지 5년 명령을 받았습니다.
A씨와 B씨는 모두 잘못을 인정하지만, 입국금지 조치는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제 삶의 터전이 한국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B씨는 한국에 있는 아이도 당분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A씨와 B씨는 자신들이 받은 처분이 적절한지 절차를 밟아 따져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입국규제지침’은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민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들은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이 지침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규제’인데 비공개, 괜찮을까요
‘입국규제지침’은 입국금지 여부와 기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입국금지 당사자들은 그 기준을 알지 못합니다. 출입국관리법에 입국 금지 사유가 적혀 있긴 하지만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이유가 있는 사람’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사람’ 등처럼 기준이 모호합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입국규제 업무처리 등에 관한 지침’ ‘벌금형 확정 외국인 심사 결정 기준’ 등을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총 67개의 지침·매뉴얼 중 6개가 비공개입니다.
인천공항에서 석달 넘게 살고있는 루렌도씨 가족이 제기한 난민인정심사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의 3번째 변론 기일인 2019년 4월4일 오후 루렌도 가족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 진술을 하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도착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제 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은 ‘범죄를 범한 사람 중 외국인보호소장 등이 강제 퇴거함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퇴거 조치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 심사 기준 일부는 공개되어 있지만 ‘기본 원칙’ 수준에 불과해 이주민이 강제 퇴거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법무부 출신 전관’이 가능하다?
이주민 사건 담당 변호사들은 “법무부가 재판 과정에서도 유불리를 따져 내부 규정을 공개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비공개 사유가 확실하다면 모두 비공개해야겠죠.
2018년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은 2018년 1월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입국허가를 받지 못해 287일동안 공항에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앙골라 정부가 콩고 출신을 탄압했다며 난민 신청을 했지만 한국 정부는 난민 심사도 못 받게 했습니다. 이 조치가 적절했는지 따지는 재판이 열렸고 법원은 2019년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지침을 제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난민이 지침에 맞게 조건을 끼워 맞출 수 있다’며 비공개했습니다. 이 지침은 이후 별도 소송을 통해 공개된됐습니다. 이상현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 유리할 경우 비공개 지침 일부가 발췌, 편집돼 공개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내부자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지침이 있다 보니 ‘법무부 출신’을 내세워 영업하는 행정사(행정기관 제출 서류 등을 작성해주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전직 법무부 공무원인 C씨는 2021년 올린 “H2 비자 동포, 벌금 내지 마세요, 출입국 단속을 피하는 행정사의 노하우” 유튜브 영상에서 “2020년 9월부터 바뀐 출입국 정책”이라며 “3년 벌금 합산 700만원이 넘어가면 체류 자격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지침을 홍보에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C씨는 “출입국 20년 경력”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전직 법무부 공무원이라고 칭하는 행정사의 블로그에 법무부의 비공개 규정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게시돼 있다. 블로그 갈무리
“지침 공개하라” 행정소송 나선 변호사들
또 다른 행정사 D씨는 블로그에 ‘벌금 및 범칙금에 대한 강제 퇴거 기준’ 중 초범은 벌금 300만원 이상, 도로교통법 위반은 벌금액이 500만원 이상 등 기준이 되면 강제 퇴거될 수 있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비공개 규정으로 추정됩니다.
이상현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지침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으면 이주민들은 불복 절차 진행을 위해 지침 등에 대한 정보를 보유한 전직 공무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사들은 지난달 20일 법무부 장관을 대상으로 ‘규정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습니다. 이 변호사는 “입국 금지 사유를 공개하더라도 법무부의 공정한 업무 수행을 방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출입국 행정 작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