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종로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겨울, 윤석열 내란에 맞서 응원봉을 흔들며 123일간 빛의 광장을 지킨 주역은 여성들이었다. 내란 우두머리를 파면하고 국민주권정부를 탄생시킨 동력도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연대했던 여성들의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탄핵 이후 처음 맞는 여성의날인 8일 ‘응원봉 여성들’이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것은 민주주의 완성에 성평등도 있음을 증명한 이들에 대한 마땅한 헌사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지표를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전날 “지연된 여성 의제들을 중심 과제로 세워야 한다”는 한국여성대회 참석자들의 촉구는 성평등 정치가 실종된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여성 주권자들이 내란에 맞서며 광장에서 외친 사회대개혁 요구는 법과 제도로 안착하지 못한 채 구호로만 겉돌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발의와 동시에 사회적 논란이라는 해묵은 장벽에 부딪혔다. 헌법불합치 판결 후에도 7년째 방치된 임신중지 보완입법,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 핵심 젠더 법안들은 정쟁에 밀려 사장될 위기다. 성평등 입법 지체는 광장의 열망에 대한 책임 방기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행이다.
여성의 과소 대표성을 해결할 선거제 개편 역시 기득권 정치에 막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6·3 지방선거 공천 과정은 여성들의 개혁 열망과 괴리된 채 차별·배제의 덫에 갇혀 있다. 이날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예비후보자 중 여성 비율은 20%대를 밑돌고,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선 여성은 손에 꼽기도 어렵다. 1995년 지방선거 도입 후 단 한번도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 배출되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될 조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내세운 ‘여성·청년 공천 확대’ 약속이 말의 상찬에 지나지 않으려면 30년째 ‘권고 규정’인 지역구 여성공천 30%를 의무규정으로 전환하는 선거법 개정부터 단행해야 한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이 전년보다 7계단 떨어진 101위로 추락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정치 분야가 최하위 성적이었고, 그 원인으로 선진국에 비해 국회 내 극심한 성별 불균형이 지목됐다. 참으로 더디고 부끄러운 성적표다. “전 정부의 여가부 폐지 공약 등으로 후퇴한 성평등 정책을 복원하겠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여야는 성평등 입법과 공천 개혁으로 그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여성 대표성이 보다 확대되고 성평등 가치가 정치와 사회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뿌리내릴 때 비로소 ‘빛의 혁명’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