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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입력 2026.03.08 19:19

수정 2026.03.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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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쇼박스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쇼박스 제공

숙부에게 왕위를 뺏기고 쫓겨난 단종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극의 단골 소재였다. 강원 영월 유배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어린 왕, 그 속에서 단종은 그저 애처로운 소년일 뿐 군주로 묘사되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딱 이 정도다. 실제로 당시 기록이 충분치 않다.

단종은 1457년 6월21일 유배를 떠나 그해 10월21일 사망했다. 이 4개월간 단종이 어떻게 살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가 몰랐던 그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낸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노산군(단종)이 돌아가시자 엄흥도가 슬퍼하며 곡을 하고 시신을 수습한 뒤 장례를 치렀다’는 문장이 단초다. 영화는 이 사실을 토대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내는 이야기를 상상해 낸 것이다. 단종의 삶이 고역이기만 했는지, 영화에서처럼 행복한 순간도 있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단종이 무력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패자의 흔적은 사멸하지 않고 후대의 사가에 의해 되살아나기도”(<모반의 역사>) 한다는데, 이 영화가 그 후대의 사가 역할을 한 셈이다.

영화는 개봉 33일 만인 8일 기준 누적 관객 1117만명을 기록했다. 2024년 <파묘> <범죄도시 4> 이후 2년 만에 1000만 고지를 밟았다. 장항준 감독이 꼽은 기억에 남는 관람 후기는 ‘관객으로 들어가서 백성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종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를 찾아 그 흔적을 확인하는 걸로 영화 관람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에게 감정이입이 된 듯하다. 멸문지화를 당할 공포 속에서도 의리를 지키는 민초들의 연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 위에 윤석열의 내란을 시민의 힘으로 극복한 대한민국이 겹친 건 아닐까 싶다. 내란 후 많이 본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외친 말이 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그와 반대로, 오랜만의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비결은 ‘패자의 역사’를 지금의 우리 이야기로 끌어온 데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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