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통치 체제의 기본이다. 전제군주국이던 조선에서도 지식인 관료들은 ‘상소’로 공론에 참여했고, 백성들은 왕의 행차 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할 ‘격쟁(擊錚)’의 기회를 가졌다. 민주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와중에도 모든 목소리가 평등하게 퍼지지는 않는다. 이 사회의 청력을 시험하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미세한 잡음처럼 흔들리며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다. 지난 2월 마지막 주에는 우연찮게도 세 번의 의미심장한 격쟁이 한꺼번에 있었다.
우선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다. 지난 2월26일,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다. 1호로 접수된 사건에는 과거 불법적으로 해외 입양된 피해자들, 두 번째에는 시설 수용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과거 목소리를 듣는 일은 쉽지 않다. 국가폭력 흔적은 피해자들의 몸과 기억, 평생 소외되고 고된 삶의 여정에 각인되어 있지만 목소리는 흩어져 있었다. 증거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경우 당사자들의 기억과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데, 여기서 신청인이 피해자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하는 대화와 피해자가 아닐 것이라고 전제하고 하는 대화, 피해자겠지만 진술 신빙성을 따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하는 대화는 인권 관점에서 차이가 크다. 과거 목소리를 들을 때 중요한 것은 숨은 부적격자를 걸러내려는 엄격함이 아니라 신청인을 신뢰하고 적격자의 탈락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개방성이어야 한다. 과거사는 개별 사안의 시시비비도 중요하지만 정치공동체 수준의 회복적 정의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세한 목소리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사실을 넘어 진실이고, 달성해야 할 것은 보상을 넘어 화해다. 크게 보고, 세심하게 듣고, 신속하게 조치해 이들 한을 하루라도 당겨서 풀어야 한다.
둘째,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에 둘러싸인 발달·지적장애인들의 현재 목소리다. 지난 2월27일에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탈시설의 경우 핵심적인 이슈는 당사자가 원하는 바를 알아내는 일이다. 이때 무작정 선호를 묻기 전에 살펴야 한다. 시설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에게 ‘지역사회’라는 대안은 상상할 수 있는 대안인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가? 이 질문이 출발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상상할 수 없다면 선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묻기 전에 선택지들을 경험해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소통 편의를 위해 이들에게 예/아니요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 예컨대 “지금 사는 데서 계속 살고 싶어요?” 같은 질문 자체가 특정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목소리는 목으로만 내는 것이 아니라 몸짓이나 미세한 표정, 건강 상태로도 낼 수 있다. 이를 누가 포착할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해석에 얼마나 권위를 부여할 것인지 등 꽹과리를 울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당사자와 조력자, 조사 절차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
셋째, 미래의 주권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다. 지난 2월24일, 청소년들이 모여 만든 언론 ‘토끼풀’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현행 신문법상 미성년자는 신문 발행인 또는 편집인이 될 수 없다는 제한 때문이다. 2021년 5월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위촉되었던 청소년 위원이 사회가 미래세대 당사자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며 3개월 만에 사퇴했던 일은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청년’ 공약은 넘쳤지만, 청소년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거의 없었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포착하는 일을 넘어 사회계약 수준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청소년은 몇%의 시민인가?
작은 목소리를 듣는 데는 리더의 의지, 적절한 제도, 전문성이 요구된다. 전쟁과 주식시장, 사법개혁 같은 굵직한 소식들 속에서 이처럼 작은 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하는 일이기에 의지가 필요하고, 사려 깊고 인간적인 절차가 요구되기에 세심하게 설계된 제도가 필요하며, 미세한 정보와 감정을 포착하고 판단해야 하기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결국 기본은 사람을 사례가 아니라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부족했기에 듣지 못했던 것이니까.
이 미세한 목소리들이 멀리 퍼져가길 기원한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