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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하여

입력 2026.03.08 19:58

수정 2026.03.0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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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차 유아동반 칸에 탑승한 아이 엄마가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아이를 관리해달라는 민원을 수차례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구체 정황을 모른다. 그러나 층간소음이 형사범죄를 일으켰다거나 악성 민원인이 접수창구를 초토화했다는 일화 등은 한국에서 괴담이 아니라 실제다.

일본의 정신과의사 구마시로 도루는 저서 <쾌적한 사회의 불편함>에서 우리 사회를 쾌적하게 하는 ‘질서’가 ‘지켜야 하는 규칙’을 넘어 ‘침범당하면 안 되는 성역’이 되어감에 따라 이전에는 용납 가능한 일탈 행위가 사회적 비난·죄악의 영역으로 편입됨을 경고한다. 그가 이런 사회의 대표 희생양으로 예시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요구에 바로 순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 아이들 소음을 당연한 것으로 수인(受忍)했다면 지금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소동이 곧 잡음·민폐로 규정되는 일이 허다하다. 노키즈존은 본래 아이들 안전을 이유로 정립된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어른들 안전(?)을 위해 재정의된 공간이 됐다. 원리가 유사하다면 적용 범위는 넓어지고 그 결과 계층과 세대, 사회적 시공간은 더 좁은 카테고리로 단절된다. 노시니어존의 등장, 영포티 혐오, 지방 소멸 등은 어쩌면 유사한 원칙으로 시행된 분류의 각 단면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안을 더 들여다보자. 앞 예시처럼 내가 누려야 하는 쾌적함의 훼손을 참지 않는 태도는 일상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소위 정상적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자임이 가정된다. 이 가정도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통상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권리는 불편을 감내할 의무보다 발언권이 세다. 국회나 정부에서도 모종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이를 입법하거나 행정명령을 발하는 시도는 늘 일어나지만 그 반대 경우는 전무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되고 있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권리는, 불의에 맞서야 하는 분명한 예외 등을 제외한다면 보통 불편함을 감내하고 수인함을 통해 지켜지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필자는 일터로서 병원이 익숙한 편이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불편하지 않으면 오지 않을, 불편함의 공간이다. 그 불편을 해결하려는 공동 목표가 있기에 역설적으로 불편을 감내할 이유가 생긴다. 예컨대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는 불편은 병을 낫게 하기 위함이고 이를 위해 의학적 위급도에 따라 기다리는 불편은 일차적으로 병원 시스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종국적으로 그 시스템의 선순환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감내하는 것이다.

공동체 질서가 사회적 위험을 방지·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법률처럼 윤곽을 단정하게 정의할 수 없더라도 이러한 질서의 발생은 보통 그 공동체가 성숙시킨 사회적 역량의 결과다. 그 역량 안에는 사회적 혼란·불편에 대해 숙고해온 수인한도(受忍限度)가 잠재되어 있다. 나 또한 때로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수인한도는 과도한 비난에서 나를 보호하고 또 용인받을 수 있다는 안전망을 제공하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지나친 불편에 저항할 권리는 수인한도 내 불편을 감내하는 토대 위에서만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불의에 맞서는 수준의 권리 주장은 늘 별론이지만, 보통 우리 일상-아이들 소란을 수인할 수 있는 기차 내 유아동반 칸, 중증환자를 위해 자신의 순위를 양보하는 응급실, 각자가 처한 양보의 자리-에서 수인한도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의 질서는 역할을 가지며 유지된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것을 소위 ‘불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나은 미래는 강박적 쾌적을 주장하는 권리가 아니라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우리의 능력, 또 그에 기반한 질서 위에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병 한림대의대 내과교수 의료인류학자

이기병 한림대의대 내과교수 의료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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