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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핵발전소, 좀 따져봅시다

입력 2026.03.08 20:05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전까지, 코스피 지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1월 말 5000을 돌파하더니 한 달 만에 6000을 넘어섰다. 파죽지세의 코스피 상승세는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했고 그 뒤에 인공지능(AI)이 있다. 지금은 AI가 최고 상전이다. AI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빠르게 대령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AI의 불똥이 핵발전소(원전)로 튀었다. AI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거라는 전망이 잦더니 지난 1월 말 정부는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발표했다. 핵발전 진흥을 내세웠던 지난 정부가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지금 정부가 그대로 추진한다는 거다. 물론 필수적인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면 거기에 대비하는 게 맞고, 그러려면 먼저 향후 전력 수요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떠도는 전력 수요는 실체가 부풀려졌거나 불명확하다. 항간에 엔비디아가 GPU 26만장을 제공해도 돌릴 전기가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GPU 26만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은 최대 1GW 정도고 지난해 여름 전력 수요가 최대였을 때 전력 예비용량은 9GW였다. AI 시대라 전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여기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공산이 크다.

대형 원전 2기를 지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전력 소비가 많은 AI 데이터센터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짓는 데 2년에서 3년 정도 걸리니 AI 전력 수요는 향후 5년 안에 많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신규 원전은 부지 선정에서 가동까지 대략 15년 걸린다. 전력 수요와 공급 시기가 전혀 맞지 않는다. 적어도 15년간은 AI 전력 수요가 아무리 늘어도 신규 원전은 관계도 없고 소용도 없다.

인공지능 불똥, 신규 원전으로 튀어

최대 15GW가 필요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도 시기와 규모가 맞지 않는다. 원전은 경직성 발전원이라 2030년까지 100GW까지 늘리기로 한, 유연한 발전원인 재생에너지 확충 계획과도 맞지 않는다. 이제라도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의 합리적인 이유를 밝히든지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AI는 그저 핑계일 뿐 신규 원전은 핵산업계 민원 처리라는 의혹은 사실이 된다.

시대가 급변할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원전은 고도의 위험시설’이라는 진실이다. 이틀 후면 15주년을 맞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웅변한다. 정말 안전하고 청정하다면 원전은 전기가 별로 필요 없는 바닷가 외딴곳이 아니라 전기를 많이 쓰는 곳에 짓는 게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다. 2002년 제작된 일본 영화 <동경원발(원전)>에서 도쿄도지사는 바로 이 논리로 도쿄 한복판에 원전을 짓겠다고 선언한다. 도지사의 폭탄선언에 그동안 쉬쉬했던 원전의 위험성, 핵폐기물 문제,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주의가 까발려진다.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원전은 모두가 꺼리는 위험시설이다. 우리가 탐내는 건 원전이 아니라 원전의 전기다.

정부는 신규 원전을 건설할 명분으로 여론조사에서 나온 ‘압도적 찬성’을 들었다. 원전을 ‘내 지역’에 짓는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압도적 찬성의 전제는 ‘나와 상관없는 지역’이다. 지금 원전 유치에 나선 지역은 대부분 원전이 이미 들어선 곳이다. 원전이 들어서면 그 지역의 미래는 원전밖에 없다. 원전은 다른 가능성을 모두 제거한다. 그만큼 위험하다. 원전 유치 신청은 더 나은 삶을 원해도 다른 길이 없어서 나온, 강요된 선택이다. 그런 곳조차 주민들은 찬반으로 갈리고 지역은 갈등과 분열에 휩싸인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구약성서의 이 단순한 경구만 실현돼도 세상은 평화가 넘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어도 공적 사안이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먼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번 신규 원전 건설은 ‘공론화 없는 공론화’로 결정됐다. 이에 비해 부족한 대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졌던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신규 원전에 관해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원전의 위험성을 염두에 둔 이 권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 결론을 전제로 전력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기후위기 시대에 전력 증가분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로 풀어가야

AI가 본격화되기 전에도 전력 수요 증가를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따라잡기 벅찼으니 어쩌면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규모도 조절해야 할지 모른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신규 원전을 들이댈 일은 아니다.

우리가 2017년 공론화 권고를 무시하고 딴청을 부리면, 2011년 ‘후쿠시마’의 교훈을 외면하면,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없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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