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차남 모즈타바 최고지도자 선출
혁명수비대 “완전한 복종” 맹세
미국에 대한 ‘강력한 저항’·체제 건재 과시 목적
미·이 공습으로 아버지·어머니·아내·아들 잃고
본인도 표적 공습으로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이스라엘 암살·권력세습 비판·이란 사회 분열 직면
하메네이 강경 정책 계승 예상되지만
일각에선 미국과 타협·개혁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9일(현지시간) 이란 당국이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차기 지도자로 지명했다고 발표하는 모습이 이란 국영 TV 방송에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어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56)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강경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등에 업은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선출은 미국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이며, 이란의 신정체제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헌법 기구인 전문가회의는 9일(현지시간)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가 숨진 지 9일 만이다. 모즈타바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건립된 이슬람공화국의 세 번째 최고지도자로, ‘권력세습’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혁명수비대 및 이란 지도층은 곧바로 모즈타바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표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수호 법학자의 신성한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 완전한 복종과 자기 희생을 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 사후 실권자로 알려진 이란 최고 안보 책임자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적들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암살해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계략을 꾸몄음에도 불구하고 모즈타바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됐다”며 모든 정치 세력이 새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도 모즈타바 선출을 환영했다.
모즈타바 선출 직후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을 향해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 국영방송 IRIB는 모즈타바 선출 후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첫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히며 “당신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세예드 모즈타바”라는 슬로건이 적힌 발사체 사진을 공개했다.
하메네이 차남 모즈타바 사진을 들고 있는 이란 시민. EPA연합뉴스
하메네이의 강경 정책을 이어받은 ‘하메네이 2.0’ 모즈타바의 선출은 이란이 미국·이스라엘과 전시 상황에서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선택을 내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정권을 굴복시키려고 기울여온 노력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며 “온건파와 개혁파를 제치고 강경파가 국가를 확실히 장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란 신정체제 권력의 정점에 선 모즈타바는 이란 국내 정치, 안보 등 국정운영 전반에 최종 결정권을 쥐게 된다. 이란 군대와 혁명수비대를 지휘하며, 핵 프로그램 관련 결정도 그가 주도한다. 모즈타바가 하메네이의 지근거리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문고리 권력’이자 막후 실세로 군림해 왔다는 점에서, 모즈타바는 서방에 대한 강경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사남 바킬 채텀하우스 중동·북아프리카 책임자는 “국내에서는 억압, 국제적으로는 저항이라는 기존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모즈타바가 하메네이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담당 외교관이었던 이란 전문가 엘런 아이어는 “모즈타바는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고 극단적인 인물”이라며 “이번 공격에 대해 실행할 보복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즈타바는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아내, 아들을 잃었다. 이란반대핵연합의 혁명수비대 전문가 카스라 아라비는 “모즈타바는 젊고 급진적인 혁명수비대 세대 사이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즈타바의 역할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카림 사자드푸르는 “그는 통치가 아닌 생존에 집중하고 있다. 이란의 과도기적 인물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어는 “모즈타바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만의 권력 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상당 부분 혁명수비대의 꼭두각시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모즈타바는 당장 이스라엘·미국의 암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은 모즈타바 역시 공격 표적이 돼 부상을 입은 상태로 파악하고 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 정권이 임명하는 어떤 지도자든 명백한 제거 대상이 될 것”이라며 표적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하메네이의 아들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진을 들고 있는 지지자. AFP연합뉴스
아버지를 이은 권력세습이라는 점도 모즈타바에게는 걸림돌이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건립된 이슬람공화국에서 권력세습은 금기시된다. 하메네이와 전임 최고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 모두 팔레비 왕조의 권력 세습을 비판한 바 있다. 하메네이는 생전에 아들이 후계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모즈타바의 선출은 이란 사회의 내부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지난 1월 이란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해 7000명 이상이 숨진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의 권력 승계는 이란 시민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이날 테헤란에서는 모즈타바 선출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창문을 열고 “모즈타바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테헤란에 사는 30대 남성은 “체제 내부에서 변화 가능성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며 “모든 것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하메네이 지지 구호조차 바꿀 필요도 없다”고 BBC에 말했다. 또 다른 남성은 “그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미국에 복수할 수 없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복수할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를 표적으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모즈타바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처럼 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린폴리시는 순교자로 희생한 하메네이의 유산을 물려받은 모즈타바가 협상을 위한 정치적 명분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역설적이게도 강한 신념으로 알려진 지도자가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그는 약하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하메네이와 가까운 정치인 압돌레자 다바리는 “다른 누구라도 지배층과 보수층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지만 모즈타바는 미국과 긴장 완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NYT에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