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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전쟁과 복지국가

입력 2026.03.09 20:04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고통이다. 전쟁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끝이 언제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갑작스러운 이 전쟁이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고통을 야기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실과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 땅에서도 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려움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전쟁 비용과 거대한 손실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 비용은 아래로 흘러 서민들이 먼저 이를 체감하고 부담하기 마련이다. 이번 전쟁은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비용의 위험을 하청의 재하청으로, 또는 고리의 맨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떠밀 수 있는 수직적인 고리가 작동한다. 실제로는 주어진 물량대로 일해야 하지만, 노동자로 취급받지 못해 연료비를 비롯한 생산 비용을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화물, 택배, 배달기사, 레미콘 같은 건설기계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 수직적인 구조에서 비용 증가를 그대로 떠안는다. 경유 가격은 며칠 사이 가파르게 올랐지만, 화물기사들이 받는 운송비는 그대로라는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은 또한 어떠한가? 전쟁 전이기는 하지만, 물가 상승으로 일본의 연금생활자들이 식사를 줄이고 저체중인 노인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그저 먼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의 노인빈곤율은 한국 노인빈곤율이 40%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한국에서 극단적인 긴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광범위할 것임은 자명하다. 여기에 부채 문제가 더해진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전쟁이 가져오는 경제적 지각 변동의 틈바구니에서 개미투자자들은 작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빚은 다른 어느 때보다 크게 불어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광범위한 소득보장이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 받는 노인이 아직 전체 노인의 절반을 조금 넘고 급여액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노인의 약 70%가 받을 수 있는 기초연금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일부에서는 기초연금을 받을지 여부를 가르는 소득인정액 기준을 문제 삼으며 중산층 노인까지 기초연금을 받게 되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득인정액은 소득과는 달리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한 온갖 자산까지 소득으로 환산해 만든 것으로 소위 중산층의 기준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다가올 인플레이션 시대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모두 충분한 보장 기능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이다. 2026년 연금 인상률은 2.1%에 불과했다. 위기와 불안의 시대, 넓게 보장하는 복지의 안전판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과 복지의 관계에 대해 흔히 평화가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복지국가로의 진전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전쟁의 고통에 대응해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 역사 속 복지국가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나아가 새로운 사회로의 구상은 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위기가 끝나기 전에 만들어지곤 했다.

전쟁이 연금생활자와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삶을 쪼그라들게 만들수록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뚜렷하다. 전쟁으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비용은 전가하고 사람을 보호하는 데에는 인색한 생산과 노동의 구조를 바꾸는 것, 불평등과 인구위기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기획하는 것이 그것이다. 위기를 변화의 계기로 삼지 않고 누군가의 고통은 고통대로 방치한다면, 조만간 우리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뉴스 한 꼭지로 소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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