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유행은 금세 끝났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두쫀쿠가 한창 떠오를 때도 다들 한마디씩 얹었고, 두쫀쿠 열풍이 꺼지자 왜 지속 가능하지 않았는지 분석들을 했다.
우선 ‘먹어보지 않았지만’ 혹은 ‘앞으로도 먹을 생각은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글이 꽤 있다. 먹지 않을 것이라며 먹을 것에 대해 하는 얘기라니, 두쫀쿠가 두바이산도 아니고 쿠키도 아닌 것만큼 이상하다. 젊은층이 쓰는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나 같은 아저씨들이 주로 수요 없는 긴 글을 공급하는 어느 소셜미디어라 그럴지 모르겠다. 두쫀쿠를 핑계로 유행에 관한 본인의 가치관을 설파하고 싶었으리라 이해하며 넘어가자.
두쫀쿠를 먹어봤다는 경험담이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다. ‘그렇게 줄 서서 먹을 맛은 아니다’ 또는 ‘내 돈 주고 사서 먹을 맛은 아니다’라는 표현이 보인다. 사람들이 종종 쓰는 말이지만, 그런 평가가 알려주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줄 서서 먹을 맛’이 있다면 30분 줄 설 맛과 2시간 줄 설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맛집에 줄을 서는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줄을 선다는 것은 맛에 대한 표현은 아니지 않나? 내 돈 주고 사서 먹을 맛과 남의 돈으로 먹으면 족한 맛의 경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로 법인카드 결제가 이루어지는 식당이 있다고는 하던데, 내 카드로 결제할 가치가 있는 맛은 대체 무엇일까?
먹을 것에 관심이 많고 식사의 합당한 마침표는 디저트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두쫀쿠가 화제에 오르면 줄이나 가성비 얘기가 아니라 맛에 관해 듣고 싶었다.
카다이프의 파삭한 식감과 마시멜로의 쫀득한 식감이 연출하는 대조가 좋다는 얘기, 반대로 카다이프의 식감이 모래 씹는 것 같아 싫다는 평가를 들으면 반갑다. 그런 표현은 두쫀쿠에 대한 평가를 넘어 그걸 먹어본 사람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줄 서서 먹을 맛’ 얘기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가진 돈과 시간의 상당 부분은 생계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에 투입된다. 반면 식사도 아니고 평범한 디저트도 아닌 두쫀쿠 먹어보기, 구내식당 점심이 아니라 가족 또는 친구와 마음먹고 하는 외식, 주말에 보러 가는 영화나 공연, 휴가에 떠나는 여행은 잠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 일에 들이는 시간과 돈의 가치를 따져보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일상의 경험을 스스로 기억하고 평가하는 언어 그리고 그에 관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이 가성비나 평점으로 축소되는 현상은 안타깝다. 루틴을 벗어나 우리를 기쁘게 하는 체험, 일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즐거운 추억을 단순히 돈과 시간을 들였을 때 아까운지 여부로 평가하면 삶이 너무 팍팍하다.
두쫀쿠를 먹어보지 않고 얹는 말이나 가성비 평가에 한정되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행위, 쇼츠나 릴스만 보고 내리는 드라마 평가는 낯선 일이 아니다. 파인다이닝은 미쉐린 별의 개수, 공연은 관객 수나 별점, 해외여행에서 방문할 장소는 구글 평점이 기준이 되는 시대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직접 해보는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체험에 대해 돈값을 한다 혹은 못한다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언어로 이를 누리고 감상하려는 노력 또한 마찬가지다. 돈과 시간을 들였는데 실망해본 경험도 삶에는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건너뛰면 세상사를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양분하기 쉽다. 새로운 체험에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인터넷의 평점, 방송이나 유튜브 같은 타인의 평가로 대체하게 된다. 검증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고정된 틀 안에 머무르게 되고 오히려 실패의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의 취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다수의 평가는 적확한 판단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혼자만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 극한의 효율을 따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무언가를 먹어보는 일, 천만 관객이 들 만한 작품성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했는지 평가하기 전에 어두운 영화관에 2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울고 웃는 것 같은 평범한 체험 같은 것 말이다.
유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