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 미국 외교정책에서 장기 전략과 일상 정책을 지배하던 시대는 다행히 끝났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한 선언이다. 그랬던 미국이 중동으로 돌아가 이란과 전쟁 중이다.
사람들은 이 느닷없는 전쟁의 이유를 찾느라 헤매고 있다. 트럼프가 말한, ‘임박한 위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당연하다. 이 전쟁은 미국 안보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란의 취약성이다. 이란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약해졌다. 상대 약점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탁월한 트럼프 눈에 그게 포착됐을 것이다. ‘신정체제가 죽어가고 있다.’ 전쟁은 이란이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일어났다.
다른 이유는 전쟁의 용이성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나 사용하고 싶어진다.
군복무 중 들은 얘기다. 한 병사가 심심하던 차에 소총을 겨누고 가늠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민간인이 가늠자에 맞춤하게 들어왔다. 모든 게 완벽했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약간의 힘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곧 총구가 불을 뿜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예외 없이 그랬다. 더구나 AI 기반 통신·정보 체계, 정밀 유도폭탄과 같은 전쟁 기술의 발달로 미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국에 치명상을 입히는 게 가능해졌다.
트럼프는 스스로 묻고 답했을 것이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독재자의 죽음을 조금 앞당기는 간단한 방법으로 또다시 세계에 존재감을 각인시킬 기회가 왔다. 그런데 신정체제가 제풀에 쓰러지기를 기다려야 할까? 내가 사형집행인이 되자.’
그러나 전쟁은 의도대로 흘러가는 법이 거의 없다.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은 전쟁 목표가 분명했고, 작전은 치밀했으며, 출구전략도 명확했다. 그럼에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변화로 장기소모전에 빠져들었다. 설득력 있는 전쟁 명분도, 분명한 전쟁 목표도,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 이란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초기부터 즉흥성, 충동성, 비일관성이라는 트럼프 개성 따라 춤추는 전쟁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트럼프는 벌써 이란 정권이 다 무너진 것처럼 주장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이스라엘이 2년간 가자를 폭격하고 점령했어도 하마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47년 신정체제 아래서 강력한 중앙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관료조직도 견고한 이란이 소규모 민병대의 하마스보다 먼저 무너질 이유가 없다.
미국이 또 전쟁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 확정된 미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 재건이라는 수렁은 없다”고 한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의 정책을 끝까지 유지한다면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그런 운명이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 자만이 그런 운명을 맞는다.
이라크전 당시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깨뜨렸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도자기 가게 규칙(pottery barn rule)’을 들어 이라크 재건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이 이라크라는 도자기를 깼으니 원상복구할 책임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조지 W 부시는 그의 재건 정책을 수용했고, 그 때문에 수렁에 빠졌다.
잘 알다시피 트럼프는 책임감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는 예멘 후티 반군 공습 때 압도적 무력 사용을 공언했다가 돌연 공격을 중단한 적이 있다. 목표가 모호하고, 출구전략이 없는 이 전쟁에서 언제든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시나리오는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트럼프가 도자기를 깨뜨리고 나 몰라라 달아나든, 갑자기 책임감을 느껴 정권교체, 나아가 재건까지 하겠다고 나서든, 어느 쪽도 해피엔딩은 없다. 이 전쟁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170여명의 어린 학생을 집단살해하고, 9000만 이란인의 생명을 위기에 빠뜨리고, 중동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고, 동맹국과 미국 시민 다수는 물론 대통령 참모·측근, MAGA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더 이상 전쟁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믿고 표를 준 미국 시민을 배신하고도 치러야 할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지금 세계는 전쟁을 최후 수단이 아니라, 최초 수단으로 쓰는 자로 인해 폭력과 파괴의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임박한 위협’의 실체다. 하메네이 제거보다 트럼프 퇴출이, 이란 정권교체보다 미국 정권교체가 더 시급하다.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