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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제가 대학에 다니던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학마다 '총여학생회'가 있었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명예교수는 "대학 사회가 점차 경쟁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교수는 이어 "민주주의 발전의 엔진을 끌어가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며 "대학 사회 구성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곧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공격이란 확장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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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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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입력 2026.03.10 07:00

수정 2026.03.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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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설희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점(사실들): 페미니즘 동아리 수난 시대

선(맥락들): 왜 페미니즘은 설 자리를 잃었을까

면(관점들): 페미니즘의 부재는 민주주의의 위기

지난해 11월1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학생회관 외벽에 ‘성균관대 여성주의 정정헌’ 근조 현수막이 걸렸다. 정정헌 SNS

지난해 11월1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학생회관 외벽에 ‘성균관대 여성주의 정정헌’ 근조 현수막이 걸렸다. 정정헌 SNS

제가 대학에 다니던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학마다 ‘총여학생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성폭력과 여성 혐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맞서 싸우며 여성을 대변하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속속 폐지되면서 서울권 대학가에선 이제 단 2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페미니즘 동아리마저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에디터픽은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왜 수난 시대를 맞고 있는지, 그리고 페미니즘 공론장이 사라지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짚어볼게요.

페미니즘 동아리 수난 시대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021년 11월2일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021년 11월2일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55년간 이어져 온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지난해 9월 ‘활동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중앙동아리에서 제명됐습니다. 그간 발간한 교지들은 다른 동아리 방에 맡겨졌고 회의 공간도 없이 떠도는 처지가 됐습니다. 편집장 초은(활동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무관심’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는 “학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선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지난해 5월 기후위기 대응 등 목적에 맞지 않는 활동을 했다며 다른 위원회와 강제로 합쳐지는 징계성 병합을 당했습니다. 당시 병합을 결정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선 “한국 남성의 극우화를 세미나에서 다루던데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지 않냐” 혹은 “비거니즘(채식주의) 간식 행사는 육식주의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라는 식의 공격적인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여학생·소수자 인권위원장 하늘(활동명)은 “백래시 때문에 인권 의제를 말하는 것조차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동덕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은 학교 당국에 의해 중앙동아리 등록이 취소됐습니다. 대학본부는 이들이 남녀공학 전환 반대 행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학교 창립 정신과 단체의 설립 목적을 위배했다”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제외했습니다. 사이렌 운영진 A씨는 “우리가 뭘 위배했단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학교가 이번 운동을 일부 페미니스트의 소행으로 알려 외부 공격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선 페미니즘을 외치는 분위기가 위축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페미니즘은 설 자리를 잃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를 표현한 이미지. 이아름 기자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를 표현한 이미지. 이아름 기자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이 쇠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2010년 후반 ‘페미니즘 리부트(대중화)’ 이후 극심해진 ‘백래시(반동)’입니다. 2016년 강남역 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을 거치며 페미니즘은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 언어가 됐습니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진 만큼 기존의 권력을 위협받는다고 느낀 남성들의 반발도 거셌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1980년대에 반동이 생겨났는데요.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이 반동을 ‘백래시’라고 처음 명명했습니다.

극심한 취업난에 따른 생존 경쟁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입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을 꺼리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페미니즘 동아리를 이력서에 쓰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 세대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등이 작용한 탓이라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학생들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든 셈입니다.

신경아 한림대 명예교수는 “대학 사회가 점차 경쟁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교수는 이어 “민주주의 발전의 엔진을 끌어가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며 “대학 사회 구성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곧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공격이란 확장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의 부재는 민주주의의 위기

여성학자 정희진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타자의 관점’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여성들은 사회에서 대표적인 ‘타자’이자 ‘이방인’이고,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에게 타자와 이방인의 관점으로 사회 제도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다양한 관점이 서로 부딪히고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고요. “페미니즘은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세상을 아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다”라는 정희진의 말처럼 말이죠.

학생들이 백래시 걱정 없이 안전하게 페미니즘을 논하며 ‘질문하고 경청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합니다. 침묵의 공간이 돼버린 대학은 다시 비판적인 대화의 장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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