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충격에 열흘 만에 ‘종전’ 시사한 트럼프
‘출구전략’ 거론 없이 대이란 초강경 메시지도
이란 “종전, 우리가 결정…석유 1ℓ도 못 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도럴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이란과의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에 ‘무조건 항복’을 압박해온 기존 강경한 태도에서 눈에 띄는 전환으로 해석되지만, 이란 타격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메시지도 동시에 내놓았다. 유가 급등, 정치적 반발 등을 고려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순된 발언이 전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도럴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이란 군사작전에 대해 “우리는 매우 결정적으로 승리하고 있다. 계획보다 훨씬 앞서 있다”며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작전 종료 시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매우 곧”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도 전쟁이 “꽤 빨리 끝날 것”이라며 “단기간의 여정(작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전이)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던 기존 입장과 달리 종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메시지를 내놓은 데는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과 정치적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CNN은 이날 트럼프 정부가 이란 전쟁을 시작한 후 예상을 뛰어넘는 유가 급등세에 ‘패닉’에 빠졌다고 전했다.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하는 등 시장이 생각보다 크게 요동치자 전쟁이 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험 신호로 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권자 불안을 의식한 듯 “우리는 모든 위협을 단번에 종식할 것이다. 그 결과 미국 가정의 석유와 가스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솟던 국제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주요국 개입 기대감이 맞물려 80달러대로 떨어졌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은 이날 유가 급등에 대비해 전략 비축유 방출 등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란 강경파 후계자 선출로 확전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 함정 51척 격침, 미사일 시설 5000개 이상 타격 등 전쟁의 성과를 여러 차례 강조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좋은 통화를 했으며 이란 상황과 관련해 그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대이란 성과, 러시아의 중재 노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끝낼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일부 참모들은 유가 급등과 장기 분쟁이 정치적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출구 전략을 모색할 것을 비공개적으로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을 전쟁에서 어떻게 빼낼지 명확한 계획을 밝히고, 이미 군사적 목표를 대체로 달성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을 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10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의 한 주유소 앞 표지판에 미·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해 치솟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나타나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종전 시한이나 출구 구상을 거론하지 않은 만큼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는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이미 이겼지만 충분히 이기지 않았다”며 “적이 결정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공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성 발언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SNS 트루스소셜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석유 흐름을 막는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지금보다 20배 더 센 타격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국가로서 재건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며 “죽음과 불, 분노가 그들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동안 내놓은 엇갈린 발언들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 불안정한 석유 시장과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미·이스라엘의 공격은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할 능력과 의지를 완전히 잃을 때까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려는 균형 잡힌 메시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 시사주간 타임지는 “중동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한 분쟁의 향방이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부각했다”고 했다.
차기 최고지도자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선출해 내부 전열 정비에 나선 이란이 앞으로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즈타바 선출 소식에 “실망스럽다”고 하면서도, 그의 아버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처럼 그를 ‘참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전쟁의 끝을 결정하는 건 (미국이 아닌) 우리”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 지역에서 단 1ℓ의 석유 수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