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미군의 정밀 유도탄이 테헤란의 하늘을 가르며 트럼프 대통령의 ‘에픽 퓨리(Epic Fury·장대한 분노)’ 작전이 전격 개시됐다. 이와 동시에 세계 경제는 단숨에 1979년의 악몽으로 소환됐다. 1979년은 이란 혁명이 부른 제2차 오일쇼크가 지구촌을 강타하며 물가가 폭등하고, 한국 경제가 사상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작전에 집착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경제정책이 단기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관세를 앞세운 보호무역주의는 구조적으로 물가 상승을 동반하며, 이는 지지층의 실질소득을 갉아먹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올해 초 단행된 베네수엘라 마두로 생포 작전의 성공은 그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심어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복잡한 경제 매듭을 푸는 것보다 선명한 군사적 승리가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에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부의 경제적 난제를 외부에 대한 분노로 우회하려는 이 성공 공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세계 도처에서 ‘제2, 제3의 에픽 퓨리’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자본시장이다. 이번 트럼프발 주식시장 폭락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교훈은 한국 주식시장이 대외 충격에 취약하고 변동성이 높다는, 전혀 새롭지 않은, 다만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사실 코스피는 원화의 안전자산 지위의 부재, 수출 중심의 높은 대외 의존도, 그리고 글로벌 자산 배분 과정에서 외국인 자금이 먼저 빠져나가는 ‘현금인출기’ 역할이라는 세 가지 축이 맞물려 대외 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코스피는 9·11 테러(-12.02%), IT 버블 붕괴(-11.63%), 글로벌 금융위기(-10.57%) 등 세계 경제의 변곡점마다 깊고 빠르게 파였다. 또, 우리와 유사한 소규모 개방경제인 일본은 이번 위기에서 3.82% 하락하며 비교적 견고하게 버텼다. 반면 한국이 12.06%나 폭락한 사실은 우리 자본시장이 대외 충격을 견뎌낼 내성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분노가 상수가 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첫번째 전략은 역설적으로 우리 내부의 지속적인 자본시장 개혁이어야 한다. 흔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후진적 지배구조와 인색한 주주 환원 정책은 하락장에서 지수를 받쳐줄 장기 투자자들을 쫓아내는 고질병이다.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는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 주식은 위기 시 가장 먼저 내다 팔아야 할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시장 개혁은 단순한 증시 부양책을 넘어, 외부 압력으로부터 국가 경제를 보호하는 ‘자본 방화벽’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가치를 제고해 ‘들뜨고 불안한 자금’ 대신 ‘안심하고 머무는 자본’이 증시의 허리를 받치게 해야 한다. 그런 체질 개선이 선행될 때에만, 우리는 분노와 공포, 허황된 소문과 주가조작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이성’의 시장을 가질 수 있다.
두번째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다. 현재 미국의 군사작전으로 인해 전 세계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강력한 물가 상승 압력이다. 공급망 병목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에 의해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진다.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자칫 금리를 내렸다가는 오르는 물가와 환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발이 묶인 통화정책은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 카드’를 꺼내 들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방어하고 민간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트럼프의 분노와 같은 불확실성은 민간의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킨다.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으로 지갑을 닫고, 기업들은 환율과 유가의 변동성 탓에 계획했던 설비 투자를 뒤로 미룬다. 분노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상시적 변수가 된 시대에는 정부가 더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고물가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취약계층의 소비를 떠받치고, 극도의 불확실성에 직면한 기업들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재정 투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할 수 있다. 물가 상승의 경로를 면밀히 살피되, 경기 방어의 짐을 재정이 적절히 분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유연한 정책 공조만이 외부 충격에 흔들리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전하고 향후의 경제성장률 반등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길이 될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