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에 국제유가 급등까지 ‘이중고’
“원재료 가격만 오르고 제품 가격은 그대로”
3분의 1로 떨어진 ‘손익분기점’···“고용 불안”
정치권 “4월 전 정부가 에너지 위기 대응해야”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충남 서산시 제공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가 장기적인 업황 침체에 더해 최근 국제유가 급등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매년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수익성까지 악화되면서 현장에서는 구조조정과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33년째 근무 중인 생산직 노동자 송호섭씨(58)는 1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원재료 가격만 올라가고 제품 가격은 쉽게 올리지 못하는 구조라 석유화학 기업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며 “지금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억지로 공장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원재료 가격과 제품 가격의 차이를 뜻하는 ‘에틸렌 스프레드(마진)’가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원재료인 납사 가격과 완제품인 에틸렌 가격의 차이가 t당 최소 300달러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지만, 최근에는 이 격차가 1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는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토탈에너지스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입주해 있지만, 업계 전반이 구조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이미 구조조정의 여파가 감지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씨는 “LG화학은 이미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고 롯데케미칼도 구조조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규직은 어느 정도 보호받지만, 협력업체나 플랜트 노동자들은 체감상 30~40% 이상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전남 여수, 울산과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생산설비 증설로 글로벌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실제 공장 가동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 기업들의 평균 공장 가동률은 2024년 74.3%였지만, 지난해 2분기에는 68%까지 떨어졌다.
비어 있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 내 점포와 임대 안내문. 연합뉴스
산업 침체는 지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산 지역 석유화학 기업들의 국세 납부액은 2022년 1조4951억원에서 2024년 1160억원으로 2년 만에 91.9% 감소했다. 법인지방소득세 역시 같은 기간 429억원에서 32억원으로 92.5% 줄었다.
이처럼 산업 기반이 흔들리자 서산시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급등이 또 다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단기간에 크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원재료 가격 상승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경우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씨는 “지금 상황도 국제유가 상승이 완전히 반영되기 전 단계”라며 “앞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원료 수급 불능 상태에 놓인 전남 여수 여천NCC가 ‘불가항력적으로 공장 문을 닫아야 된다’고 선언한 것처럼 다른 석유화학 단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예비후보 등이 지난 10일 서산 대산읍 근로자복지회관 앞에서 유가 상승에 따른 정부의 긴급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양 예비후보 측 제공
정치권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예비후보는 전날 서산 대산읍 근로자복지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은 에너지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며 정부의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양 예비후보는 “서산 현대오일뱅크는 가동률 하락이 우려되고 있고 충남 당진 현대제철 역시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며 “서산·당진 지역 중소 협력업체로 연쇄적인 타격이 확산될 가능성이 큰 상황으로, 결국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국제유가 급등은 서해안 산업벨트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4월 이전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과 유류세 한시 유예, 수출 중소기업 긴급 경영자금 지원 등을 요구했다.